문화·스포츠 문화

[책] 아시아 평화운동 거점 오끼나와의 투쟁사

■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아라사끼 모리떼루 지음, 창비 펴냄)


일본 최남단 오끼나와의 미군기지 문제는 2차대전 종전 후 미일안보체제의 '구조적 차별' 속에서 방치돼 왔다. 오끼나와 주민들은 60년 넘게 끈질긴 문제제기와 저항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동아시아로 오끼나와 문제 해결을 호소해왔다. 미ㆍ중ㆍ일 강대국의 패권다툼 속에서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 지역주민의 자치와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시작한 이 운동을 통해 오끼나와는 이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오끼나와, 구조적 차별과 저항의 현장(원제: 構造的沖繩差別)'은 평생을 오끼나와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 아라사끼 모리떼루(新崎盛暉)가 간명하게 정리한 2012년까지 오끼나와 투쟁의 보고서다.

저자는 "전 일본 면적 0.6%인 오끼나와 섬에 74%의 미군기지가 집중돼 있다"며"전후 안정적인 미일안보체제 유지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해온 오끼나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국경을 넘는 연대와 교류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차대전 종전으로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일본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천황의 실권을 배제한 상징천황제, 일본의 비무장화, 그리고 오끼나와 분리ㆍ군사지배를 삼위일체로 하는 점령정책을 폈다"며"일본의 '평화'헌법은 오끼나와를 배제한 채 성립됐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오끼나와는 대미종속적 미일안보체제의 기반이 됐다는 얘기다. 1952년 일본은 미군정에서 벗어났고 1960년 일본본토의 미군기지는 52년에 비해 4분의1로 축소됐다. 그러나 오끼나와는 일본 본토와 분리돼 미군정하에 남았고 오끼나와의 미군기지는 1960년의 미일안보 개정교섭을 거치면서 2배로 늘어났다. 1972년 5월 15일에야 오끼나와는 일본에 반환됐으나 일본은 오끼나와 소재 미군기지의 유지책임을 지고 주일미군기지 기능을 오끼나와에 더욱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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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냉전 해소와 중국의 강대국화 등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일본은 미국의 하위동맹국으로 자리잡았다"며"미일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본정부 역시 이런 변화를 적극 이용하면서 오끼나와에 각종 부담을 전가해왔다"고 고발한다.

결국 안보를 위해 오끼나와의 미군기지 존재는 당연시되었다는 얘기다.

"전후 수십년간 이루어진 오끼나와로의 기지집중과 그에 대한 이런 무신경이야말로 구조적 차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후 안보논리는 모든 정상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사고정지(思考停止)를 낳았다는 얘기다.

저자는 "구조적인 오끼나와의 차별은 이런 사고정지 속에서 체제 유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며"최근 급부상한 오끼나와 독립 주장의 배경에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차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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