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이 회계 대란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조선에 이어 해운과 항공업체들까지 원화 가치가 속절 없이 하락하면서 정상적인 기업이 회계상 적자로 전환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생 상품인 키코(KIKO)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환율 급등이 장부상 적자를 더욱 키우면서 기업들을 상장 퇴출로 내몰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지만 묘책을 찾지 못한 채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외환당국 뒷짐, 회계대란으로 확산=이달 들면서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은 눈에 띄게 줄었다. 환율도 26일 다소 내려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1,500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 같은 환율 급등은 기업의 장부상 손실을 더욱 키우고 있다. 당장 환헤지 통화 옵션상품인 키코의 피해 손실 규모가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3조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환율이 6월 말 1,046원에서 8월 말 1,089원으로 되면서 손실금액이 2,162억원(6월 대비 14.6%) 늘었다. 10월 말에는 1,291원으로 치솟으면서 키코 손실액이 3조1,874억원으로 급증한 것이다. 6월 말에 비해 115.6% 증가한 규모다. 현추세라면 키코에 가입한 기업의 경우 장부상으로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 키코뿐만이 아니다. 조선업체에 이어 해운ㆍ항공업체까지 환율 상승으로 날벼락을 맞고 있다. 이들은 배나 비행기 등을 매입할 때 매입 대금을 달러부채로 장부상에 기재해왔다. 부채 상환 기간은 통상 5~10년인데 이 기간 동안 부채로 정리된다. 문제는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러 부채가 크게 늘면서 영업을 잘 하고도 적자 기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 H상선의 경우 올 3ㆍ4분기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순이익은 환손실이 올해 6,74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60배 이상 폭증하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금융당국 깊어지는 고민=금융위원회는 해운업체에 대해 부채를 달러로 기재하는 현행 회계기준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르면 27일 관계기관 간 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해운업계는 달러 부채의 3분의1은 장부상에, 나머지는 주석에 기재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상장기업에 대해 환율 급등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계상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회계는 국제 기준이고 투자자를 위한 것”이라며 “글로벌 기준에도 맞고 투자자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키코 피해 손실을 회계 처리할 때 비상장 기업에 대해서는 주석으로 할 수 있도록 혜택을 부여하면서도 상장 기업에 대해서는 ▦회계 정보의 국내외 비교 가능성 ▦대외 신인도 하락 등을 우려, 현 제도를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해운업체를 도와주기 위해 국제적 기준에 통용될 수 있는 해법을 어렵게 찾아낸다 해도 임시 방편일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금융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세계가 환율 손실 회계기준 변경 등을 함께 추진하지 않는 한 한국 혼자서는 근본적인 치유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며 “환손실을 주석으로 넣도록 하는 것도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결국 문제는 환율이다.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회계 대란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