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 6월 낙하산 논란이 일던 공기업 인사를 전면 중단시켰다. 대형 금융지주회사와 금융공기업에 모피아 출신이 내려간다는 말이 돌았기 때문이다.
꽉 막혔던 인사는 8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이 교체되면서 물꼬를 텄다. 금융권에서는 9월 들어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을 시작으로 인사가 재개됐다. 우리금융그룹 계열사 인사도 이때서야 대부분 이뤄졌다.
그랬던 금융권 인사가 또다시 감감무소식이다. 현재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신임 사장 공모 절차를 밟고 있지만 상당수 공공기관들은 새 수장이나 임원을 뽑지 못하고 있다. 유력 후보가 거론되던 곳들마저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기관장 인사, 언제 이뤄지나 관심만=당장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8월30일 금융위원회에 사의를 전했다. 사의를 밝힌 지 두 달이 넘었지만 후임 인선작업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만호 전 산은금융지주 사장의 기보 이사장행을 점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김경동 한국예탁결제원 사장과 우주하 코스콤 사장도 각각 지난달 13일과 6월3일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차기 사장 선임작업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다.
기업은행도 조준희 행장의 임기가 다음달 27일이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은행 안팎에서는 조 행장의 연임 가능성을 점치지만 과거와 너무 비교될 정도로 어떤 하마평도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조 행장의 업무 능력이 워낙 뛰어나 연임에 결격 사유를 찾기 힘든 것은 사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기업은행장 인선 작업은 평온할 정도다. 여러 이유가 오가지만 낙하산 논란으로 관료 출신이 바로 기업은행장에 가기는 부담스러운 탓에 경쟁할 수 있는 후보가 그만큼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공공기관장 자리가 정해지지 않다 보니 금융당국도 연쇄 효과로 인사가 미뤄지고 있다. 캠코 사장에는 홍영만 상임위원이, 예탁결제원은 유재훈 증권선물위원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신임 감사로 유력한 진웅섭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도 지금은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위에서부터 인사가 막히니 줄줄이 영향이 있는 셈이다.
당국 내부에서는 올 초부터 이해선 중소서민금융국장이 차기 1급 승진 1순위로 뽑히고 있지만 1급 인사가 이뤄지지 않아 계속 미뤄졌다.
이 때문에 국장 자리인 기획재정관 자리도 공석이다.
공공기관의 감사, 임원 인사도 하세월이다. 기보와 신보 등은 감사와 일부 상임이사 임기가 이미 지났지만 후임을 뽑지 못해 여전히 근무 중이다. 예금보험공사도 감사와 일부 비상임이사의 임기가 만료됐고 자산관리공사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나씩 처리한다…경영 공백 우려=금융권 안팎에서는 청와대의 인사 스타일이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사 때문에 잡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작은 자리라도 꼼꼼히 따져본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저축은행 같은 작은 우리금융 계열사도 내부적으로는 9월에 신임 대표 추천이 이뤄졌지만 실제 결정은 10월 말에 가서야 나왔다.
비서실장 교체 후 인사 검증을 더 까다롭게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사가 하나하나씩 이뤄지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꼼꼼히 따져 본 후 결정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사가 너무 늦어지면서 이에 따른 경영 공백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철저한 검증도 좋지만 사의를 밝힌 지 몇 달이나 되는 인사들이 계속 나오면 일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인사는 적합한 인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적시에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