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구조조정이 급하다/이한구 대우경제연 소장(시론)

 지금 우리 경기는 어떤 계절에 해당하는가. 경기정점을 어디로 잡을지 아직 확정된 게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보아 경기후퇴가 시작된 지 1∼2년이 경과되었기 때문에 지금 또는 가까운 장래에 경기회복은 시작될 것이고 또 그것을 예고하는 경제지표들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특히 3월중 실물경제지표, 예를 들어 생산과 출하증가율, 수출증가율, 도소매판매증가율, 국내기계수주나 건설수주액의 증가속도가 1∼2월 이전보다는 한결 좋아보인다.○경기지표 다소호전  또 경기동행지표로서 큰 역할을 하는 재고율지수의 증감률도 지난 89년 중반과 93년초 경기저점시기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을 시현하고 있다. 마침 선진국들의 경제성장기조는 강화되고 국내 건설투자도 정부주도로 한층 늘어날 추세이므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비교적 큰 편이다. 엔화시세도 얼마나 더 약세를 지속할 수 있을까. 한국수출품의 가격경쟁력도 나아질 수 있겠다.  그렇지만 과잉기대는 금물이다. 이번에는 경기회복이 되어도 그 회복속도나 파급효과는 과거 어느때 보다도 시원찮을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번 경기하락기간중 충분한 조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생산요소가격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여유있는 생산요소 공급상태는 아니다. 아직도 실업률은 3%미만에다 임금은 플러스 상승이고 세금과 물류비용, 이자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비용조건이 이러면 새로운 수요를 창조할만한 신제품이라도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경영자세나 관련 산업조직을 갖추어야 할텐데 아직도 밀어내기식 생산을 계속하니 특히 중화학공업분야에서의 재고증가는 최소한 1년정도의 조정기간을 소요할 것이다.  둘째, 가격구조, 부채구조, 수출구조와 산업구조가 향후 몇년간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높은 국내 가격수준은 개방화가 진행되면서 가격파괴현상을 불러오게 돼 있고 현재의 가격수준에서도 채산을 못 맞추는 내수기업들의 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런 상태에서 실업자는 느는데 어찌 소비수요가 일어나겠는가. 지난 몇년간 거품을 만드느라고 기업들과 가계에서의 부채는 제법 늘었는데 이는 미래에 소득증가가 생겨도 투자와 소비가 늘어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예고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수출상품구조가 고부가가치화로 전환되는 게 아니고 수출지역으로서는 선진국에서 쫓겨나고 있는 형편이다. 주력산업인 반도체·철강·석유화학·자동차·조선에서는 과잉투자 시비가 이어지고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금융기관과 공기업의 경영상태는 곧 나타날 개방경쟁시대에 한결 걱정거리로 등장할 것이다. 이들 분야의 구조조정이 시작될 시점에서 어떻게 내수경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과잉기대는 말아야  셋째, 잠재성장률이 하락일로다.  노동공급증가율은 근로시간 단축경향과 노동밀도의 약화현상때문에, 자본공급증가율은 저축률하락과 자본배분을 생산부문보다 생활의 질 개선분야로 치중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낮아질 게 뻔한데 기술보호주의속에서 기술의 자체개발 능력은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사회전체가 효율적으로 바뀌는게 가시적이지 못한 현실이기 때문에 추가적 인플레 없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은 한결 떨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의 꿈을 버리지 못하면서 정부가 경기부양을 하면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많이 나오고 있다.  만일 현재처럼 개별 경제주체들이 신체단련을 안 한 상태에서 경기부양을 한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돈을 많이 풀거나 사회간접자본투자를 대폭 늘린다면 우선은 생산이 늘어나고 고용사정이 덜 악화하면서 내수경기는 살아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데 비해 거기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장기적으론 경쟁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된다.  일단 국내수요가 늘어나더라도 국내물건과 서비스값이 외국제보다 훨씬 비싼 상황에서 우리나라 수요자는 외제를 구매해 즉시 수입증가와 국제수지악화로 연결되고 외채증가, 원화평가절하, 물가상승 현상이 시간을 두고 이어진다. 우리의 세금(통화증발도 세금과 마찬가지다)으로 남의 나라 경기부양을 시키는 꼴이다.  더 큰 사회적 부담은 우리의 경제체질을 고칠 기회를 잃는다는 데서 나온다. 실력연마를 안하고 적당히 지내면서 외국 빚으로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사회풍조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점에 와 있다. ○단기부양책 삼가야  노동·금융·행정서비스시장의 개혁, 전문서비스시장의 개방, 기업과 가계의 차입경영시정, 수출구조의 고급화, 미래산업구조로의 개편, 공리공론중시의 사회적 가치관 타파, 기술혁신환경의 조성 모두 한시를 지체할 수 없는 최우선 과제다. 경기회복시기가 언제인가라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경제조정을 빨리, 그리고 최소의 부작용을 수반하면서 수행할 방법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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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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