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이정호(29)씨는 지난 5월 결혼하면서 예물로 커플링과 시계만 준비해 결혼 예물 비용이 3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결혼 전에 가입해두었던 청약예금 통장 300만원은 해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고 적립식 펀드와 주식에 투자한 4,000만원도 결혼 때 손대지 않았다. 대신 이씨는 평생 한번뿐인 신혼여행을 그리스ㆍ터키 지역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1인당 300만원씩 드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디지털 세대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기성 아날로그 세대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일기획이 쌍춘(雙春)년을 맞아 지난 5~7월 25~34세 미혼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디지털 시대의 웨딩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결혼이 단순한 재테크를 넘어 ‘결혼을 잘 활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낸다’는 ‘혼(婚)테크(결혼+technology)’ 개념이 자리잡고 있어 결혼을 일종의 투자, 노후 준비의 시작 등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들 가운데 결혼에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78%를 차지, 결혼을 통해 이루고 싶은 새로운 삶의 계획에 관심이 높았다. 결혼도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62.1%였으며 결혼은 노후 준비의 시작이라는 응답은 84.4%나 됐다. 디지털 세대는 결혼 이후의 생활도 예전처럼 막연한 동경보다는 확실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취업난ㆍ양육비 등의 현실을 감안, 아이도 생기면 낳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답변이 65.5%를 차지했으며 90.6%가 결혼생활도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답해 재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남의 시선보다 실속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혼수를 장만할 때도 과거에는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는 ‘지출하는’ 혼수였다면 이제는 청약통장ㆍ주식 등 ‘모으는’ 혼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혼수는 되도록 최소화하는 게 좋다는 응답이 88.4%였으며 혼수로 청약통장ㆍ주식ㆍ보험도 바람직하다는 답변은 87.8%나 차지했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이후 높아지는 실업, 지속되는 불경기 등의 불안감으로 인해 배우자를 고를 때 사랑ㆍ헌신 등 전통적인 가족관보다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개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조건을 살피게 된다는 응답자가 70.6%였으며 능력만 있으면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55.8%나 됐다. 이에 따라 제일기획은 25~34세대를 위한 유망 혼수상품의 키워드로 기본에 충실하되 (Basic) 다양하게 결합하고 변형시켜(Convergence) 편하고 즐거움을 주어야(Comfortable) 한다고 조언한다. ▦TVㆍ냉장고 등 기존의 생계형 가전보다는 TV+홈시어터, TV+컴퓨터 등 정보와 재미를 추구하는 인포테인먼트 혼수 ▦같은 회사 제품군으로 맞추던 혼수 패키지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이종 제품으로 시너지를 내는 시너지 증폭 혼수 ▦체면상 마련했다 부담스러워 장롱에 모셔두던 장롱 예물에서 합리적 가격에 브랜드 가치를 가진 실속형 명품 혼수 ▦환경과 건강을 고려하면서 감각까지 갖춘 개성 웰빙 혼수 ▦획일적인 제품보다 직접 제작하거나 맞춤 주문한 창작형 혼수 등을 추구한다는 것. 김익태 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장은 “25~34세대는 궁극적으로 혼테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한다”며 “겉보기에는 생각 없이 시대 변화를 맹목적으로 쫓는 추종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