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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 등 경제상황 맞물려 연금정책만으로 해결 힘들어
보험료 못내는 국민 더 많아 명목 소득대체율 높이면 소득격차만 오히려 더 커져
기금규모·보험료·재정투입등 정부 청사진 수립 선행 필요
우리나라 국민연금 40년 가입자의 소득대체율 46.5%(2028년 40%)는 국제 수준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낸 보험료의 평균 1.8배를 연금으로 받으니 공무원연금보다는 못하지만 수익률(수익비)은 좋은 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 도입돼 아직 30년 된 가입자가 한 명도 없다. 지난해 12월 연금을 받은 353만여명 가운데 20년 이상 가입자가 14만여명, 평균 연금이 월 87만원에 그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40년 가입자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자는 야당의 주장이 크게 와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데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까지 맞물리다 보니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으면 오는 2060년 적립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잠재부채가 쌓여가고 있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지 않더라도 보험료 인상 등 자구노력을 하지 않으면 국민연금기금은 2050년 104조원, 2060년 394조원의 당기수지 적자가 발생한다. 더 이상의 수지 적자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보험료율을 14%대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 7%인 공무원연금 사용자 부담금을 9%로 인상하는 데 호의적인 정부와 달리 기업과 자영업자 등은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의 여파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50대 초중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현실의 벽, 노동시장 양극화와 청년 취업난 등으로 인해 가입기간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높이기가 쉽지 않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소득대체율과 가입기간이 2014년 18.1%(10.1년)에서 2032년 23.4%(17.3년)까지 오른 뒤 하향세를 보일 것이라고 한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에서는 36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해 생애평균소득의 45%를 타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직장생활이나 자영업 등을 하면서 30년 이상 꾸준히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여건이 선진국만 못하고 퇴직연금 가입률도 낮다. 하지만 노동시장 정책, 국내 경제상황 등과 맞물려 있어 연금정책만으로는 풀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국민연금을 타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매우 넓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 가입자 2,113만명 가운데 569만명(27%)이 실직 등으로 보험료를 내기 어렵거나 장기체납한 사람들이다. 의무가입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전업주부·학생·군인 등 적용제외자도 1,084만명에 이른다.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보다 안 내거나 못 내는 사각지대와 적용제외자가 더 많다.
월 60시간 이상 근로자를 의무가입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과 기준이 다르지만 통계청의 사업장근로자 사회보험 가입실태 조사 결과는 더 심각하다. 전체 사업장 근로자의 31%, 임시·일용직의 83%, 월 1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의 85%가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다. 상용직, 월 400만원 이상 근로자의 미가입률이 3%인 것과 대조적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각지대 문제를 놓아두고 명목소득대체율만 높인다면 국민연금을 못 받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격차가 더 커진다. 복지부 정책의 기본방향은 사각지대 해소"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각지대 해소가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돈이 많이 든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여야는 공무원연금 절감 재원 333조원 중 20%(67조원)를 사각지대 해소 등에 쓰기로 잠정 합의했다. 연평균 1조원 남짓이다.
김성숙 국민연금연구원장은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보험료 인상, 세금(정부 예산) 투입만으로 재정불안이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며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적정한 국민연금기금 규모와 재정목표, 보험료율 인상폭,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의 돈을 쓸지, 국민연금제도를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창률 단국대 교수는 "고령화 속도 등을 고려해 종합적인 플랜을 세워야 한다"면서 "보험료율 인상은 준조세나 마찬가지이므로 '증세는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