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시장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20일 열린 한은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한은의 늑장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의원들은 국내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한은의 시각이 너무 안일하다며 한목소리로 질타했고 시장안정을 위한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은 “한은의 금융위기 대응이 해외 각국의 조치에 비해 매번 한발 늦고 있다”고 지적하고 “기준금리를 최근 0.25%포인트 인하한 것은 구색 맞추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나 의원은 “한은은 범정부 공조체제를 구축해 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와 보조를 맞춰 선제적 위기대응에 앞장서달라”고 주문했다.
같은 당 최경환 의원은 “세계중앙은행의 금융위기 대응에 한은이 강 건너 불 구경하는 것 아니냐”며 “한은이 대책수립 등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정책 실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또 “각국의 중앙은행이 재무당국과 긴밀한 협조체제 하에서 일사분란하게 정책조율을 해나가는 반면 한은은 오히려 기획재정부와 정책 엇박자를 나타내기까지 했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배영식 의원도 “한은이 경기 대응에서 너무 소극적”이라며 “시장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강운태 무소속 의원은 “기준금리와 시장금리의 격차가 역대 최대치로 벌어지고 통계상 통화량은 계속 느는데 시중에는 돈 가뭄이 심해지는 등 한은의 통화신용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시장의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총액한도대출을 올해 6조5,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대폭 늘리거나 지급준비율을 인하해야 한다”면서 “또 기준금리도 추가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2년 이상 실기한 한은 금리정책으로 자산가격의 거품을 키웠다”고 질타했다. 김 의원은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 거품이 심한 기간은 2002~2006년인데 한국은 이 기간에 사상 초유의 저금리 정책을 실시했다”며 “미국은 2004년 6월부터 인상 쪽으로 바뀐 데 반해 한국은 이보다 16개월이나 늦은 2005년 10월에 가서야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실기 논란과 관련해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그때그때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면서 “지금은 물가ㆍ경기와 국제수지 등 3가지 큰 거시변수의 방향이 충돌되고 있어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고심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 총재는 ‘독도 표기 논란’에 휩싸인 10만원권의 제작을 일부 중단했고 오는 12월까지는 (보조 도안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고액권 발행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한달 전에 10만원권 제작을 일부 중단한 상태”라며 “12월에는 구체적인 시제품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늦어도 그때까지는 구체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내년 상반기에 발행하려면 지금도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며 “다만 인물 초상의 변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10만원권 도안으로 앞면에는 백범 김구의 초상을 담고 뒷면에는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물 제850호)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넣기로 했는데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독도가 없어 보조 도안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