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혼란스런 양상으로 전개되던 생명보험사 2차 구조조정이 다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당초 계획과 일정대로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 부실 6개사 일괄매각 원칙이 재확인되고 있다.생보사 구조조정에 혼선이 있었던 이유는 3가지 때문. 먼저 대한생명 문제라는 잠복변수가 돌발적으로 표출됐다. 두번째, 5대재벌과 외국계거대자본 위주의 시장개편이라는 성급한 추론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여기에 정책당국과 불협화음까지 맞물려 구조조정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당초 일정대로 추진= 그러나 실제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부실생보사를 일괄 매각하기 위한 수순이 시작됐다. 금감위는 지난달 말 부실사 매각업무를 담당할 주간사선정 업무에 들어갔다.
금감위는 외국계 브로커·컨설팅사와 국내 회계법인들의 제안서를 다음주말까지 접수받아 3월말에 매각 주간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제일은행을 매각할 때 모건스탠리를 주간사로 삼았던 것과 같은 맥락. 지금까지 17개사가 제안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체이스맨해튼, 에이원, KPMG, 블랙스톤, 허드슨인터내셔널, 모건스탠리 등이 주간사 선정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주간사는 한국정부가 투입해야할 공적자금 부담 최소화와 국내외 원매자물색, 판매업무를 대행하게 된다.
◇대한생명의 진로= 구조조정의 최대 난제이자 핵심 변수. 우선 부실사 일괄 매각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관심사다. 만약 대한생명이 부실생보사로 지정되고 일괄매각 대상에 포함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지금으로선 구조조정과는 다른 차원에서 제3자 매각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메이저이면서 최근 몇년간 보험감독원 경영평가에서 최우수등급을 받았던 대한이 부실사의 범주에 포함되면 잃는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생보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다. 대한생명이 공개매각 시장에 나올 때 상품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나머지 6개사의 매각도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대한생명은 진로는 구조조정과는 별개로 진행하되 미국 메트라이프사를 비롯한 국내외 자본에게 동등한 자격을 부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총자산 14조에 이르는 대한생명을 인수할만한 자본력을 갖춘 국내기업이 있겠느냐는 점에서 메트가 유리한 위치에 있다. 메트측은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해외자본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되 한국정부가 보증을 선다는 구체적인 자금조달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5대재벌 참여= 생보시장이 5대재벌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전망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당장 법적인 제한이 여전히 존재한다. 현대나 LG, SK 등이 본격진출을 눈 앞에 두고 있고 대한생명 인수도 타진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자금이 충분치 않다. 설령 재벌계열의 대형생보사가 탄생하더라도 1~2개사만이 대형사로 출발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재벌들의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는 규모를 갖춘 보험사중 시장에 나온 보험사가 대한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5대재벌의 생보시장 각축전도 「먹을 게 없는 소문난 잔치」에 그칠 공산이 크다. 더욱이 재벌문제에 대해서는 금융당국간 정책조율이 안돼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금융당국간 불협화음= 재벌 참여 문제에 대한 두 기관의 시각이 서로 다르다. 금감위는 페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부실사 1개를 인수하는 선에서 재벌의 시장 진입을 허용할 방침이었으나 재경부는 현행법의 의거, 2개사 인수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만일 2개사를 인수할 경우 재벌그룹이 생보진출의 댓가로 치뤄야할 부담은 최소 5,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대에 이른다. 이 정도 금액이면 대한생명 인수도 가능한 금액. 메트가 대한측에 제시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과연 이만한 돈을 들여 2개 부실사를 인수할 회사가 있겠느냐는 회의적이다.
최근엔 재벌그룹들도 관망자세로 돌아섰다. 만일 부실사 지정후에 2개사를 인수한다면 공적자금이 투입돼 부담이 최소한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간 불협화음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부처 구조조정을 앞두고 두 부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업법 해석과 공적자금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재경부와 구조조정이 주임무인 금감위간 불협화음이 지속되면 될수록 혼란 양상도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향후 전망= 전반적인 일정이 다음주중 발표될 예정이다. 일괄 매각 주간사도 이달말 결정된다. 다소 지연되는 듯한 구조조정도 다시 급피치를 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한생명 문제가 쉽게 풀릴지는 미지수. 지난달 1차 실사작업이 끝났지만 2차 실사도 지리하게 지속될 전망이다. 덩치가 워낙 큰데다 욕심내는 곳도 많고 내외국인간 역차별문제도 제기되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권홍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