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9월4일] 전기시대 개막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882년 9월4일, 토머스 에디슨이 증기엔진의 스위치를 올렸다. 굉음과 함께 작동한 기계는 전기를 쏟아내 뉴욕 맨해튼의 가정으로 뿌렸다. 상업용 전기발전이 시작된 순간이다. 전기문명 시대를 연 이날의 전기를 받아 쓴 곳은 불과 59가구였지만 수요는 곧 크게 늘어났다. 그을음도 소리도 없이 밤새 일정한 빛을 내는 전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디슨은 돈방석에 올랐을까. 반대로 돈만 까먹었다. 소비지 근처에 발전소를 세워야 하는 직류발전의 특성 탓이다. 2,300여개의 전등을 켜기 위해 에디슨은 중소형 발전소 85개를 지었다. 틈을 파고 든 것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발전 방식. 고압의 전류를 생산, 송전한 뒤 소비지역에서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낮춰 사용하는 교류발전은 장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석탄이나 용수 공급이 용이한 곳이면 어디든지 대형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었다. 발전단가도 싸졌다. 에디슨은 경쟁에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사형용 전기의자가 등장한 것도 고압 교류전력의 위험을 부각시키려는 에디슨의 로비가 먹혔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살인집단’이라는 에디슨의 흑색선전에도 교류발전의 우수성이 부각되고 웨스팅하우스가 시카고 만국박람회(1893년 개최)의 전기공급권까지 따내자 에디슨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JP모건은행은 에디슨전기회사를 다른 회사와 합병해 대형 전기회사로 만들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인 제너럴일렉스릭(GE)이 이렇게 탄생했다. GE의 주식 5%를 얻은 에디슨은 이때부터 전기사업에서 멀어졌으나 미국의 전력산업은 웨스팅하우스와 GE 간 경쟁과 협력을 통해 눈부시게 커나갔다. 현대 산업사회를 이끈 전력산업의 성장에는 창의력뿐 아니라 효율성과 시장선점을 위한 경쟁, 기업 간 협력이 깔려 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