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존경받는 기업, 기업인을 만들자] 3-1. 신뢰 경영의 현장을 가다 (8) 롯데그룹

롯데호텔이 서울 소공동에 들어선 것은 지난 1979년. 그해 3월 호텔 준공식을 마친 신격호 회장은 객실을 둘러보다가, 느닷없이 담당직원을 불러 복도의 천정을 깨라고 지시했다. 이제 막 지은 건물을 부수라고 한 것이다. 천정 속이 드러난 후 신 회장은 직접 랜턴을 들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불이 났을 경우 방화시설이 제대로 돼있는 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신 회장은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로부터 만 21년이 지난 2000년10월 롯데그룹은 윤리경영 선포식을 가졌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경영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직한 기업정신이 요구된다”며 “잘 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서 사업을 방만하게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짓는 일이다”고 말했다. 롯데 그룹이 추구하는 정직한 기업, 수익성 위주의 내실경영이 함축된 말이다.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기업의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신 회장이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지난해 말 기준 롯데그룹의 35개 계열사 가운데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칠성음료, 롯데리아 등 17개 회사에는 차입금이 전혀 없다. 그룹 전체의 부채비율은 76%.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선정하는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상위 그룹에서 롯데는 빠지지 않는다. 무차입경영은 단순히 돈을 빌리지 않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롯데맨들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일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있는 업종을 선택하고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사업을 엿보지 않는 것이 바로 롯데의 일류정신이다. 롯데칠성음료ㆍ호텔롯데ㆍ롯데월드ㆍ롯데건설 등 롯데의 주력기업들은 모두 동종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IMF도 비켜간 재무구조 1등기업= 국가 최악의 외환위기 시절이던 지난 98~99년 시중에선 `대한민국은 못 믿어도 롯데는 믿는다`라거나 `롯데의 신용도가 대한민국 신용도보다 낫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돌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가 BB+ 수준이었던 반면 롯데의 기업신용도는 AAA 수준. IMF(국제통화기금)가 국내 기업들에게 `부채비율 200%`를 재무건전성 가이드라인으로 제시, 압박을 가했던 시절에도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90%가 되지 않았다. 삼성전자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도 당시엔 연 30~40%의 고금리로 회사채권을 발행해야 했지만 롯데에겐 10% 전후의 우대금리가 적용됐다. 환란 일부에선 롯데그룹의 주력사업이 현금 판매 위주이기 때문에 환란을 이겨냈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금 장사를 했던 다른기업들이 모두 환란시절 살아남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롯데의 저력을 나타내준다. 이와 함께 그룹 총수의 난관 극복 의지는 되새겨 볼만한 대목이다. 지난 98년 신 회장은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현금 2,000만달러를 그룹 경영에 헌납했다. 일본에서 알뜰살뜰 모았던 개인재산을 들여온 것. 신 회장은 이와 관련, “한국이 어려움에 처했다고 돈을 빼내가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외화를 들여와야 조기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의 개인재산 출자는 다른 그룹 회장들의 사재 출연으로 이어졌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기업인의 참모습을 실천한 셈이다. ◇롯데에는 정리해고가 없다= 롯데는 `한식구` 철학을 고집하고 있다. “회사와 경영자, 그리고 종업원은 한 식구다. 조금 어려워 졌다고 종업원을 내보내면 안된다”는 것이 신 회장의 소신이다. 이 때문에 롯데의 인사관리는 직원의 신분안정을 유독 염두에 두고 있다. `사오정`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40~50대 명예퇴직자들이 속출하는 세태와는 사뭇 다르다. 롯데 그룹에는 `전체 사장단회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35개 계열사 사장들은 각각 맡고 있는 회사의 경영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는 자율적인 책임경영제는 이미 30여년전 롯데에서 자리잡았다. 박헌준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때 조직 구성원들은 보람을 느끼고 기업활동에 대한 직원들의 몰입도(commitment)가 높아져 수익 극대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롯데의 무차입경영이라는 흔하지 않은 경영성과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장학ㆍ복지재단 설립 지속적 사회사업 롯데가 펼치는 사회사업은 크게 두개의 창구를 통해 이뤄진다. 지난 83년 설립된 롯데장학재단은 교육부문의 창구다. 이곳에선 초중고생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며 연구비 지원, 전산실습실 건립, 교육기자재 지원 등의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설립이래 지난 10월까지 총 2만1,000여명의 장학생에게 145억여원을 지원,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으로 자리잡았다. 수혜자는 초등학생에서 대학원생까지 다양하며 장학생 중에는 사법고시 합격자는 물론 박사가 된 수혜자도 300여명에 달한다. 지난 98년 환란시기에는 실직자 자녀 1,000여명에게 특별 장학금 8억4,000여만원을 지원했으며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는 최근에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복지재단은 사회복지부문의 통로다. 지난 94년 설립된 이 곳은 고아원을 포함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과 정신대 할머니, 원폭피해자 지원, 의료봉사사업 후원 등 점차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복지재단은 최근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해를 당하거나 임금체불, 사기 등 피해를 입은 외국인 근로자와 조선족 동포들을 돕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노신영 롯데 장학재단ㆍ복지재단 이사장은 “경영성과를 사회로 환원하는 롯데그룹의 지원으로 해마다 수천명의 장학생과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작은 정성을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 장학금과 복지재단 기금을 더욱 확대해 사회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떴떴한 기업만이 무한경쟁 이긴다" ■ 롯데건설 경영원칙 “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남에게도 떳떳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떳떳한 사람, 떳떳한 기업만이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올해 롯데에 입사한지 38년째를 맞이한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의 경영원칙이다. 대학졸업 후 롯데맨으로 사회 생활의 첫발을 내디뎌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겼다는 임사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의 최우선 윤리원칙으로 `떳떳함`을 강조한다. 무차입경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롯데그룹의 경영원칙과도 일맥상통한다. 남에게 빚을진 상태에서 상대방에 대한 의사결정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원칙은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개인의 윤리 원칙임과 동시에 기업경영의 근간이 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2001년 10월 윤리헌장을 선포하고 사내에 윤리사무국을 신설했다. 임 사장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임원급 이상이 윤리위원으로 참여하는 윤리위원회도 구성했다. 직원들의 윤리의식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우수 사원을 선발해 포상하고 있다. 윤리 경영을 통한 이윤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빛을 내고 있다. 롯데건설은 작지만 꾸준하게, 조용하지만 의욕적으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내 여직원 모임인 `한샘회`는 롯데건설 여직원 복리를 위한 자치단체이지만 매년 `일일 찻집`을 열고 수익금을 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또 건설업체의 특성상 자주 건립하는 견본주택의 비치물들은 경매를 실시해 불우이웃에 전달하는 활동도 꾸준히 펴나가고 있다. 최근 열린 대구 달서구 용산의 `롯데캐슬 그랜드` 견본주택 전시물 경매 때는 수천명이 몰려드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으며 경매 수익금 5,000여만원은 인근 양로원과 고아원 등에 전달됐다. 롯데건설은 이 밖에도 매년 크고 작은 수해, 폭풍피해 때마다 복구 건설장비 및 성금을 기탁하는 등 영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동수기자 best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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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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