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與 "투자활성화·일자리창출" 합의<br>與 "과감한 투자 없으면 출총제폐지 물거품" 독려<br>재계 "구체적인 결과물 나와봐야…" 환영속 신중
| 여당과 경제단체가 경기 활성화를 위한 '빅딜 제안' 을 구체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9일 오전 여의도 63빌딩에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여당 의원들이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5단체장과 간담회를 갖기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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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활성화의 열쇠는 규제완화.’
비록 ‘조건 없는 출총제 폐지’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재계가 앞으로 2년 내 14조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할 의사가 있다고 공식 표명한 것 자체가 주목거리다.
그동안은 국내 환경도 환경이지만 글로벌 시장 여건이 불안정해 기업들이 실탄만 확보해놓을 뿐 투자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14조원을 투자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은 ‘투자할 여건’이 성숙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관건은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 정부 및 여당이 보다 전향적으로 규제를 완화한다면 그동안 참았던 투자활동이 봇물처럼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9일 경제단체 릴레이 정책간담회를 결산하면서 ‘수도권 총량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상정할 방침’이라고 화답함에 따라 재계 주변에서는 “규제완화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높이는 모습이다.
◇“아직은 확신하지 못한다”=재계는 그러나 출총제 폐지와 상법 개정 논란에서 보듯 청와대와 정부가 여전히 규제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획기적인 규제완화에 ‘반신반의’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전경련과의 간담회에서 거듭 “결단을 내려달라”고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요청했지만 경제5단체와의 공동합의문은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표현에 그쳤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정부가 출총제 폐지의 대안으로 순환출자 규제 방안을 만지작거린다는 소식은 재계의 신중한 행보를 더욱 더디고 무겁게 만들 뿐이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순환출자 규제가 시행되면 그룹사들은 매년 수천억원의 자금을 들여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조원이 드는 대규모 투자를 계획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열린우리당, 규제완화 총대 멜 듯=김 의장은 이날 전경련과의 간담회 인사말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결단을 요청하기 위해 왔다”며 “공격적인 신규투자를 결행해달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 의장은 또 “출총제 폐지 등은 메가톤급 사회 논란거리들”이라며 “기업이 과감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못하면 (출총제 폐지의) 사회적 합의가 물거품이 된다”고도 말했다.
전경련 측은 일단 김 의장의 경제부흥 의지 자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투자 활성화 의지는 의심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가 여러 규제완화에 부정적인데 열린우리당이 과연 힘이 있느냐”고 말했다.
재계의 이 같은 시각을 잘 알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이날 수도권 총량 규제완화 방침을 전격 공개, 입법권을 통해 규제완화를 달성하겠다는 실행계획을 보여줬다. 실제로 수도권 총량 규제완화는 관련법안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이 의원입법으로 개정법안을 상정한 뒤 한나라당의 협조를 얻어 이를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경우 수도권 공장 증설은 가능해진다.
◇재계, “기대는 하지만…”=열린우리당의 친기업 행보에 대해 재계는 일단 환영하는 모습이다. 특히 과도한 수도권 규제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는 데 차질을 빚은 점을 감안하면 여당의 수도권 총량 규제완화법안 추진은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이번 전경련 조사에서 하이닉스의 경우 수도권 공장 증설 허용으로 오는 2010년까지 총투자 6조원과 연간 4조5,0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됐다. 또 3,100개의 협력업체를 포함해 약 9,000명의 고용효과도 기대된다. 여기에 공장 건설에 소요되는 16만명에 대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문제는 경제 활성화 노력이 얼마나 현실화하느냐는 점. 열린우리당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개별 정부부서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전과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총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순환출자 규제는 출총제보다 더 심한 규제여서 “차라리 출총제를 그대로 존속시키라”고까지 요구하는 실정이다.
S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은 출총제를 비롯한 규제들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며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해주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돼야 투자의 걸림돌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여당의 규제완화와 기업인 사면 노력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확인되지 않는 한 민간투자활동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