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은행 유감

어디선가 휘파람소리가 나는 순간 두 사람은 총을 뽑아들었다. 해밀턴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은행인 BON의 초대행장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미국은행들은 서부개척자들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성장했다. 두 행장의 권총결투는 당시 은행들간에 얼마나 경쟁이 치열했던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 은행들은 그런 가운데 경쟁력을 키우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힘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의 은행원들도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경쟁상대는 다른 은행이 아니라 자기가 몸담고 있는 은행의 동료직원들이었다. 인사철 때마다 투서가 난무하고 「마타도어」가 횡행했다. 정부관리와 정치권에 줄을 대고 「편가르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은행장들 가운데 상당수가 중도하차하거나 쇠고랑을 찼다. 새정부는 금융개혁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은행들이 개혁을 했고 또 현재 이행중에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외형적 개혁만 되고 있다. 금융개혁의 핵심은 내부개혁, 즉 금융자율화이다. 이제 은행도 자율경영 아래 「돈버는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금융개혁은 아직도 요원하다. 대통령이 은행의 예대마진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은행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줄줄이 대출금리를 내리는 현상을 「신관치금융」외에 달리 뭐라고 표현할 것인가. 정부는 금융개혁 과정에서 많은 돈을 은행에 투입했기 때문에 경영에 개입할 권리가 있지만 금융자율화를 위해 개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정부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도 문제지만 은행들은 더욱 더 문제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 5개 은행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은행들도 본래의 모습을 잃었거나 잃을 지경에 있다. 수많은 은행원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임원들은 소액주주들의 소송으로 알거지가 될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오기」를 부릴만도 한 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더 철저히 길들여진 것 같은 인상이 든다. 만신창이가 된 은행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관치금융을 탈피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전임자들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소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맨해튼은행의 후신인 체이스맨해튼은행의 행장실에는 해밀턴과 버르행장이 결투를 벌였던 권총이 소중히 보관돼 있다. 은행원들에게 이 은행을 한번 방문, 마음을 다잡으라고 권하고 싶다. 엄청난 금융개혁의 와중에서 지금 은행원들은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총구의 바로 앞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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