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만찬회동을 갖고 북한 핵 사태, 한미관계, 대북송금 관련 특검 문제 등 국정 현안에 대해 폭 넓게 의견을 교환했다.전ㆍ현직 대통령은 취임식 이후 56일만에 다시 만나 부부 동반으로 다른 배석자 없이 만찬을 함께 했다.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된 만찬이 끝난 뒤 회동결과를 구술 받은 송경희(宋敬熙) 청와대 대변인은 “반갑게 만나 식사를 했고 많은 얘기를 진지하게 나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송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만찬 회동에서는 주로 김 전 대통령이 화제를 이끌어 나갔고 노 대통령은 경청하는 쪽이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우선 북한 핵 문제와 관련, “7,000만 민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인 만큼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평화적 해결 원칙을 반드시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당하신 말씀”이라면서 “반드시 그렇게 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미관계에 대해선 “남북관계와 병행해서 잘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그래야 우리의 자주적 입장이 강화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나아가 호남 민심 악화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특검 실시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현대의 대북 송금은 크게 보아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목에 대해 송 대변인은 “구술할 때 노 대통령이 특별히 다른 말을 추가 하지 않았다”면서 “특검 문제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주로 듣는 입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전ㆍ현 대통령은 만찬에 들어가기 앞서 건강, 기후 등을 화제로 삼으면서 때때로 미소를 짓는 등 시종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백악실에서 중식으로 진행된 만찬에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 번에 국군 서울지구 병원에 가신 것은 특별한 증세가 있어서가 아니라 검사 받으러 가신 거죠”라고 물으며 제일 먼저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을 챙겼다.
김 전 대통령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이 다 좋다고 할 수 없다”면서 “체크해보니 지난 5년 동안 건강을 갉아먹고 살았다”고 대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목이 많이 잠겨 있어 때로 발언 내용을 알아 듣기가 어려웠다. 노 대통령이 “여기 온지 50일 정도 됐는데 답답하고 큰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하자 김 전 대통령은 “익숙해지면 지낼 만 하다. 노 대통령은 총명하니까 잘 할 것이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이날 청와대에서는 문희상(文喜相) 비서실장과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이 본관 앞에까지 나가 김 전 대통령 내외를 영접했고 노 대통령 내외도 현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맞은 뒤 엘리베이터도 먼저 타게 하는 등 각별히 예우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