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주택 소비자들은 아파트를 선택할 때 ‘브랜드’를 우선 순위에 놓기 시작했다. 저렴한 분양가와 우수한 입지뿐 아니라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브랜드로 신뢰감과 자부심을 주는 아파트에 살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지난 2000년 초 개발된 삼성물산의 ‘래미안’ 브랜드가 이 같은 주거 문화의 혁신을 불러왔다.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무려 70여개의 아파트 브랜드가 생겨났고 저마다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웰빙ㆍ고급 아파트를 강조하고 나섰다.
우후죽순처럼 브랜드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대형 건설사의 고급 브랜드 가치는 더 확고해졌다. 같은 지역에서 동시 분양한 아파트들 사이에서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 차이가 벌어졌다. 실제 품질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고급 브랜드만 붙이면 불티나게 청약자들이 몰려왔다. 지방에까지 번진 대형 건설사들의 ‘고급 브랜드=고분양가 전략’은 이 때부터 공고해졌다.
시장 논리에서 보면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이 비판할 것은 못 된다. 가방 하나도 브랜드에 따라 수백만원씩 가격 차이가 나는 마당인데 수억원씩 하는 아파트가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우월감과 만족감을 준다면 분명 브랜드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고급 브랜드의 고분양가 전략은 오히려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분양가 논란 지역인 용인에서는 최근 중견 건설사들이 드디어 분양가 인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양가 인하 후에는 계약 성적도 차차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들은 여전히 분양가 인하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한 임원은 “미분양이 버겁기는 하지만 기존에 우리 브랜드 아파트를 구입했던 사람들을 고려해서라도 분양가 인하는 선택하기 힘든 카드”라고 딜레마를 전했다.
물론 분양이 안 되서 당장 유동성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면 고분양가 고수 마케팅은 업체의 자율에 맡길 일이다. 시장이 고분양가를 심판할 수는 있지만 분양가를 내리라고 무작정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고분양가의 고급 브랜드 아파트가 입주시기에는 나 홀로 ‘불 꺼진 아파트’로 남아 있다면 과연 그 때도 그 아파트가 선망의 대상이 될지는 의문이다. 시장침체로 서울 강남권에도 ‘불 꺼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적어도 오는 2010년까지 부동산 시장 회복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심한 굴욕을 겪을 수도 있다. 분양가를 인하해서라도 일단 사람이 사는 아파트를 만드는 게 브랜드를 오히려 살리는 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