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22·미래에셋)의 시원한 장타와 박인비(27·KB금융그룹)의 컴퓨터 퍼트. 이 둘을 동시에 갖췄다면 필드를 접수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김세영과 박인비를 섞어놓은 듯한 대형 신인이 본색을 드러냈다. 주인공은 호주동포 이민지(19·하나금융그룹). 이민지는 18일(한국시간) 미국 윌리엄스버그 킹스밀 리조트 리버 코스(파71·6,347야드)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5언더파로 역전 우승(상금 19만5,000달러)했다. 올 시즌 LPGA 투어 정식 데뷔 후 11개 대회 만의 첫 승. 김세영과 김효주(20·롯데)의 2파전으로 압축되던 신인왕 경쟁 구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신인이면서 우승한 선수는 김세영(2승)과 김효주(1승), 이민지(1승)뿐이다.
이민지는 호주 퍼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티칭프로, 아버지는 클럽 챔피언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골프를 배웠고 호주 국가대표와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를 지냈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아마추어 때부터 이름을 날린 리디아 고(18)를 떠올리게 해 '제2의 리디아 고'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말 퀄리파잉(Q)스쿨을 수석으로 합격, LPGA 투어에 데뷔한 이민지는 그러나 올 시즌 10개 대회에서 네 차례나 컷 탈락할 정도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드라이버샷 거리는 평균 261.54야드(17위)로 넉넉했지만 라운드당 30.5개(92위)인 퍼트가 문제였다. 그랬던 이민지는 시즌 전체 일정의 3분의1이 지나자 약속이나 한 듯 치고 올라갔다.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3위였던 그는 마지막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6개에 보기는 2개로 막아 한 라운드에 6타를 줄였다. 나흘 내내 60대 스코어를 기록하고 마지막 날 LPGA 투어 정식 데뷔 후 개인 최소타 신기록(65타)도 세웠다. 마지막 날 드라이버샷은 평균 285야드, 퍼트 수는 27개였다. 나흘간 3퍼트는 한 번뿐.
승부처는 15번홀(파5·473야드)이었다. 2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린 이민지는 핀까지 184야드를 남기고 5번 아이언을 들었고 타구는 안개를 뚫고 홀 3m 옆에 멈췄다. 과감한 퍼트로 이글 성공. 세 홀 남기고 단독 2위 앨리슨 리(19)를 4타 차로 따돌려 이때 이미 우승을 예약했다. 16번홀(파4) 퍼트를 남긴 상황에서 일몰로 경기가 중단됐으나 대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루를 지나 현지시각 월요일 오전7시(한국시각 18일 오후8시)에 재개된 경기에서 이민지는 3퍼트 보기로 출발했지만 마지막 2개 홀에서 파를 지켜 2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그는 "올 시즌 몇 차례 더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랭킹 1위 등극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이민지는 이동하거나 휴식 때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한다. 유소연(25·하나금융그룹)이 13언더파 단독 2위, 재미동포 앨리슨 리는 12언더파 단독 3위로 마쳤다. 세계 1·2위 리디아 고와 박인비는 5언더파 공동 16위다. 한국(계) 선수들은 올 시즌 12개 대회에서 10승을 합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