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반도체·컴퓨터 등 대부분 정보기술(IT)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이 사라진다. 반도체·휴대폰 등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는 관세 철폐로 수출 확대 등 일단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엔저를 무기로 세를 확장하고 있는 일본 기업과 기술 격차를 줄이며 추격에 나선 중국 기업의 공세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기술 확보를 통한 시장지배력을 강화 등 선제적 대응조치가 요구된다.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참석한 54개국은 지난 18일 IT 제품 200여개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미국과 중국·유럽연합(EU)을 비롯한 80개국은 오는 24일까지 이번 안에 대해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은 "다음주 말께 성공적인 최종합의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매우 낙관한다"며 "이번에 합의를 위한 원칙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이 최종 타결되면 전 세계 1조달러(1,150조원)에 달하는 IT 제품들에 무관세가 적용된다. 현재 IT 제품의 글로벌 무역 규모는 연간 대략 4조달러로 이 중 4분의1에 해당하는 제품이 관세를 부과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무관세 적용 IT 제품 수도 기존 140개에서 200개로 늘어나게 된다. 협정이 공식 체결되면 디지털복합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비디오 게임,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제품이 새로 관세를 면제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977년 발효된 ITA는 IT 제품의 무관세화를 규정한 다자간 협정이다. 각국은 일찍부터 무관세를 적용할 것을 주장해왔으며 특히 IT 제품의 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게임기·내비게이션·의료기기까지 IT 제품으로 보고 관세를 없애자며 강하게 무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IT산업 경쟁력이 취약한 EU는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은 주요 수출 품목인 LCD 디스플레이 패널, 리튬 이온 배터리 등 제품이 이번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되지 않자 협상에 반대해왔다.
반도체·무선통신기기·전자응용기기 등 독보적인 IT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는 ITA가 타결되면 수출시장 확대 등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다만 미국·EU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주요 시장에서 이미 독보적인 무관세 혜택을 누려왔으나 ITA로 중국·일본 기업과 동일한 적용을 받게 돼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우리 IT 기업들이 제품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고 앞서 선점한 미국·유럽 시장에서 단기간 내 최대한 시장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