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에 있어서 인적자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과거 60~70년대의 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도 인적자원을 잘 활용한 덕이었다.
21세기의 지식기반 경제 하에서는 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자원이 자본에서 지식과 창의력 있는 인적자원으로 바뀌게 됐다.
이런 중요한 인적자원을 우리나라에서는 세가지 측면에서 크게 낭비하고 있다.
첫째, 최근 들어 조기 은퇴와 퇴직이 많아지면서 고급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 고취 목적으로 노동법이 개정돼 자유로이 해고가 가능해졌고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회사의 인력을 많이 감축하였는데 주로 노조와는 무관한 고급 인력들이 명예퇴직의 길을 걸었다.
이렇듯 40ㆍ50대에서 퇴직된 고급 인력의 상당 부분이 평생 실직자로 남게 되기 때문에 당사자 개개인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전체에서 볼 때 엄청난 인적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노년층이 많아지는 인구구조와 사회연금 문제를 감안해 정년퇴임 제도를 없애고 계속 일을 하게 권장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한국은 이런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과 같이 유연한 노동시장이 경제에 유익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제도학파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문화를 벗어난 제도는 그 시행에서 착오를 일으킨다.
서양에서는 40대나 50대에 해고가 돼도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집단주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다른 회사에서 해고된 고급경영인을 새로 채용하지 않는다.
정부에서도 중간 경영인을 채용할 수 있다고 문은 열려져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서양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일방적인 유연성에 불과하다. 한국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을 하고 제왕적 기업주가 생기는 것도 한번 해직되면 사실상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나이가 젊은 최고경영자(CEO)만 갖게 되면 구조조정이 다 되고 창의력이 발휘되는 것처럼 믿는 모양이다. '40대 은행장' 하면서 대서특필됐는데 40대가 은행장이 됐을 때 그 여파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경영의 중요한 부분은 부하를 지휘하고 통솔하는 것이다.
장유유서의 문화가 깊이 내려진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을 지휘ㆍ통솔하기도 어렵고 나이가 낮은 사람을 상사로 모시지 못하는 문화이다.
따라서 경영이 어려워지고 나이 많은 부하직원은 언제 해고될지 전전긍긍하기 때문에 한국의 고급경영인 열 명 중 한명은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는 보도였다.
최근 미국에서 16명의 의사ㆍ심리학자ㆍ사회학자들이 10년이 걸려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연륜이 쌓이면 노쇠하고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myth)이고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줄어들지만 지혜는 늘어나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것처럼 능력이 퇴화되지 않는다는 보고였다. 80대가 가까운 대통령을 선출한 국가에서 40ㆍ50대에게 '물러나라'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둘째, 지식기반경제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이 제일 왕성할 20대의 초반을 군복무 때문에 2~3년을 허비하게 된다.
남북이 대치돼 있기 때문에 병역의무가 불가피하다고 하겠지만 창의력을 발휘해 경제를 부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국방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50만 예비군을 갖고 있어 유사시에 즉시 소집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우리도 가령 군사 훈련을 6개월 정도로 하고 거국적인 입장에서 필요로 하는 과학ㆍ기술 분야의 학생이나 직장인은 예비역으로 편입시키는 것도 국가를 위하는 것이 된다.
셋째, 피터 드러커 교수가 주장하는 것같이 21세기의 주요 경제자원은 지식과 창의력을 가진 지식 직업인으로서 이것은 남녀의 구별이 없다. 하지만 아직도 제도적인 문화적인 차별로 여성 인적자원이 허비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5%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을 뿐 아니라 어느 직장에 가서 봐도 여성의 지식 직업인으로서의 진출이 미진하다.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국가의 부는 가장 중요한 자원인 인적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우리는 인적자원을 많이 낭비하고 있다.
이런 낭비가 선진국에서는 발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인력개발뿐 아니라 그 낭비를 없애는 거국적 인적자원 정책이 필요하고 본다.
/권오율<호주 국립그리피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