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농협, 횡령·방만 경영에 내부통제도 안돼…'금융기본'마저 부실

■나사 풀린 '금융공룡' 농협<br>수년째 비상경영체제… 경쟁력은 은행 절반<br>비리·횡령사고 빈번… 내부감사시스템도 결함<br>"조직 변화 못시키면 고객들 외면·도태… 뼈깎는 혁신 서둘러야"


금융회사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농협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산 180조원대의 초대형 은행 전산망이 마비돼 고객들이 4일째 금융거래를 제대로 못하고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협의 내부관리체계 미흡과 방만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농협은 매년 끊임없이 터지는 횡령사고를 비롯해 공과금 유용, 대출금 편취, 금품수수 등 금융사고의 수법과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어 '비리 백화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사령탑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조직장악력에 치명적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 경쟁력 바닥 수준=농협은 수년째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 부문의 실적은 다른 경쟁 은행들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농협 신용 부문(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662억원으로 전년 동기(4,147억원) 대비 26.7% 증가했다.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율(NIM)은 2.10%로 같은 기간 0.3%포인트 상승했다.고정이하여신비율은 1.16%포인트나 상승한 2.57%를 기록했다. 건설업과 부동산업 등에 쏟아부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영향과 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총자산도 전년 동기 대비 1조원가량 줄어든 181조3,433억원을 나타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실적이 개선됐지만 농협이 특수은행 중 자산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기간 다른 은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실제 기업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지난 2009년보다 81.6% 증가한 1조2,901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농협은 국내 5위권 은행의 규모에 걸맞지 않는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라며 "'공룡'조직의 비대함이 금융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농협의 실적부진 요인으로 대출 포트폴리오 구조를 꼽는다. 농협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이 전체 여신의 11.82%를 차지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약 16조원가량인데 대부분이 PF대출이어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은 "부동산시장 침체로 사업이 중단되고 시공사 부도가 확산되고 있어 부실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질타한 바 있다. ◇툭하면 비리·횡령 등 금융사고에 내부통제 시스템도 마비=지난해 농협중앙회의 부산 구포지점 직원이 3년6개월여에 걸쳐 79억원을 횡령한 사고가 발생했다. 단 하루 만이라도 지점 내 현금잔액과 서류를 대조해보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농협은 당시 횡령사고를 적발한 뒤 곧바로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공모자는 찾지 못했으며 내부관리 시스템도 별 문제가 없다며 사고를 개인비리에 따른 것으로 마무리했다. 농협의 내부감사 시스템이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미 농협의 금융사고 수준은 '도'를 넘어선 상황이다. 농협중앙회가 지난해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9건,2009년 15건,2010년 5월까지 7건 등 4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금액은 모두 101억4,900만원이다. 이중 44%인 18건(89억8,700만원)이 내부 직원들의 횡령사건이었다. 시중은행에서 크고 작은 횡령사고가 한 해에 한두 건 일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횡령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농협의 방만한 경영도 여전하다. 농협은 2005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성과급 1조5,575억원, 특별성과급 2,938억원, 자기계발비 3,723억원, 자녀학자금 1,308억원, 명예퇴직금 1,972억원 등 수천억원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또 이미 보유한 부동산이 2조9,000억원대에 이르지만 농협은 본점 건물을 신축하는 데 1,302억원을 쏟아부었고 보유한 골프회원권만 544억원어치에 이른다. 2009년 이후 법인카드 사용액만도 1,401억원에 달하고 고급 승용차 임차료가 월평균 7,600만원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료적 문화가 화 키워=농협의 금융사고가 빈번한 또 다른 원인으로는 관료적이고 배타적인 조직문화가 꼽힌다. 이번에 전산장애가 발생했을 때도 실무진이 회장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는 등 금융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또 회장은 본인이 무한책임을 져야 할 조직에 대해 "나도 농협에 당했다"는 말을 내뱉는 등 그야말로 '모래알 조직'의 면모를 낱낱이 드러냈다. 농협 내부에서조차 자신들의 조직문화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농협의 조직문화는 철저히 줄을 서는 관료적인 문화"라며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 위기상황에 책임 있게 대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금융공룡'으로 불리는 농협에 과감한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내년 3월께 금융지주사로 전환할 예정인 농협이 현재의 느슨한 조직문화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앞으로 고객 서비스 수준이 더욱 악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고객에게 몸을 낮추는 금융회사, 조직 간 시너지를 내는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농협의 뼈를 깎는 혁신노력이 필요하다"며 "농협 스스로 혁신과 개혁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고객들로부터 외면받는 금융기관이 돼 도태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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