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압정이야기


압정이 있었습니다. 압정은 벽에 붙어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볼 뿐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연필ㆍ삼각자ㆍ지우개가 '벽에만 붙어 있지 말고 내려와서 같이 놀자'고 불렀습니다.

압정은 한참 고민하다 벽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벽에 있을 때는 둥글둥글하고 착했던 압정이 내려오자 뾰족한 침으로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친구들은 벽에 다시 올라가라며 면박을 줬습니다. 압정은 슬퍼하며 아이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작은 학교'학생의 졸업작품이다. 관계 맺기의 불편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는데 삽화와 배경 음악을 넣어 발표하는 것을 보며 어린 학생의 상상력에 무척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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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인재 하나가 평범한 인재의 300배 가치를 창출한다'는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말처럼 기업은 창의적 인재 확보에 혈안이다. 학교도 창의적인 인재육성을 위해 변하고 있다. 중등과정에서는 STEAM(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의 결합) 수업을 한다. 대학에서는 지식융합학부, 창의IT융합공학과 등 융합학제를 만들고 인문학, 예술수업을 이수하도록 추진 중이다.

반면 깊이 없는 융합교육은 학생들에게 혼란만 주니 기초나 튼튼히 하자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개설ㆍ운영되는 융합학과들이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융합교육은 이제 걸음마 단계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만 봐도 융합연구팀을 구성해 특정 주제를 연구하는 IGERT(Integrated Graduate Education & Research Training) 프로그램을 이미 지난 1997년부터 시작했다. 핀란드 헬싱키의 공대, 경제대, 디자인대는 1990년대부터 융합수업을 진행하다 2010년에는 아예 알토 대학(Aalto University)으로 통합했다.

앞서 언급한 '작은 학교'의 교육 철학은 '깨달음은 나무처럼 자라난다'이다. 창의적 인재육성은 이처럼 어린 나무를 키우는 마음이 필요하다. 미래의 꿈나무들이 또 다른 '압정이야기'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정성껏 물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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