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의 경영전략은 황영기(사진) 회장의 이른바 ‘모죽론(毛竹論)’에 잘 나타나 있다.
대나무의 일종인 모죽은 씨를 뿌린 지 5년 동안 싹을 피우지 않지만 죽순이 나오면 하루에 최대 70~80㎝씩 자라 1년만에 거대한 나무가 된다. 싹을 피우지 않는 5년 동안 뿌리를 넓게 뻗으며 준비를 하다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당분간 단기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내실 경영과 리스크 관리로 힘을 비축한 뒤 인수합병(M&A) 등의 기회를 포착해 ‘2013년 자산 600조원, 아시아 10위, 글로벌 50위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게 KB금융의 목표다. KB지주가 지난해 4ㆍ4분기 순이익 급감을 무릅쓰고 선제적으로 1조2,000억원 가까운 충당금을 쌓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경기 하강 위험에 선제적 대응= KB금융은 지난해 순이익 1조8,733억원(영업이익 2조3,421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말 출범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4ㆍ4분기 실적 악화 탓에 순이익이 전년 그룹 전체의 실적보다 32% 줄었다.
이 같은 순익 감소는 건설ㆍ조선업 구조조정과 경기하강에 대비해 보수적으로 총 1조1,864억원의 충당금을 쌓았기 때문이다. 회사측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여신을 부실 자산으로 미리 반영하고 경기 하강에도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막대한 충당금으로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았지만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유상호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보수적이고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으로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체력을 비축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올해 2차 구조조정과 자본확충 펀드 등의 리스크가 현실화 실현되더라도 본질적 가치의 훼손 가능성이 가장 낮다”고 평가했다. 김은갑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순이익 규모보다 충당금 적립 전 영업이익 규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다른 은행보다 자본 안전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KB금융 역시 경기 악화에 취약한 은행업의 특성상 건전성이 추가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이병건 신영증권 연구원은 “자산 건전성 악화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 부담”이라며 “올해 충당금 적립액의 관건은 가계 및 신용카드 건전성 문제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실 경영 고삐 죈다= 이 때문에 황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그룹 경영방침을 내실 경영을 통한 성장 기반 구축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4대 핵심 과제로 ▦그룹 시너지 극대화 기반 구축 ▦리스크 관리 강화를 통한 성장기반 공고화 ▦효율성 제고 및 수익성 중심의 내실 경영 ▦M&A 시장에서 탄력적인 대응을 제시했다.
경기 침체의 여파가 상당 기간 지속되고 실물 경제의 어려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게 황 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황 회장은 “진정한 강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올해는 금융시장이 매우 어려워 금융 회사들이 합병 등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담보할 가능성이 높다”며 “더욱 주도적이고 선제적으로 M&A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자본 확충이 ‘발등의 불’인 만큼 리딩뱅크답게 뼈를 깎는 모습을 보이고 은행 안정에 최우선 방점을 두겠지만 매력적인 물건이 나온다면 M&A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설명이다.
최근 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조달 비용이 낮추고 자본 건전성을 높인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황 회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는 KB금융이 국내 최강, 최대의 금융 그룹으로 솟아오를 기회”라며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처럼 소처럼 뚜벅뚜벅 전진한다면 목표보다 훨씬 더 높은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