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대체로 시간과 공간 및 인간 속에서 존재한다. 늘 인간과 함께 해왔지만 존재가 불확실한 것 가운데 신과 귀신이 있다.
귀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여러 고전의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옛 문헌에서부터 오늘날의 영화나 소설, 드라마, 만화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귀신이 등장한다. 본격적인 여름철에 접어들면 TV 프로그램 납량특집에는 어김없이 귀신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귀신은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귀신이 존재한다. 귀신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이며, 현재의 우리 삶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귀신은 사회적 모순과 억압된 심리를 대변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조상신을 믿는 우리나라에서 신과 귀신은 가끔 혼동되기도 한다. 신이란 천지신명으로서 공명정대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선신을 말하며, 귀신이란 음귀로서 가해를 자행하는 악신을 뜻한다. 일생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아무 불만도 없이 죽으면 그 혼은 만족하여 미련 없이 승천해서 신이 되지만 일생을 고생과 고뇌 속에서 살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본의 아니게 비명에 죽게 되면 그 영혼은 불만과 미련 때문에 승천하지 못하고 부산해 있다가 사람들을 가해하고 보복하는 비정한 일을 저질러 불행을 일으키는 일을 하게 된다. 즉, 자기가 미진한 정이 있어서 그 화를 남에게 보복하는 셈이며, 매우 무서운 악신으로 둔갑해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이라면 매우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무당은 신과 인간 또는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다. 신은 사람들에게 옳게 살라고 전하고 사람은 신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며 믿음이나 정성을 대가로 일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무당은 귀신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그 한을 풀어주어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 안내자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이들은 결코 목숨을 내놓고 귀신과 맞붙어 싸우지 않는다. 귀신과 하나로 어우러져 함께 살아간다.
우리 귀신은 한을 품으면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만, 끊임없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 원한을 풀기를 바란다. 한이 풀리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원한을 풀어준 사람에게 보답을 하기도 한다. 우리 귀신은 단순한 영혼일 뿐이지만, 절대 악의 모습은 아니다. 서양귀신과 달리 우리귀신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악해진다.
서양의 엑소시즘은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이다. 이것을 행하는 사람을 엑소시스트라고 한다. 엑소시즘은 악마가 씌인 사람이나 사물에서 사탄이나 악마를 몰아내는 종교 의식으로 굿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엑소시스트는 무당이다.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영화<엑소시스트>는 실제로 1949년 메릴랜드에서 있었던 14세 소년의 엑소시즘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다. 서양 귀신은 결코 무당과 타협하지 않는다.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서양의 귀신은 결코 회개시킬 수 없는 악의 정수로 그려진다. 서양 귀신과 무당은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하는 관계이다.
불교에서는 구병시식은 귀신이 몸에 달라붙어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의식이다. 이는 귀신을 없애거나 쫓아내는 의식이 아니라, 음식을 주고 법문을 알려주어 귀신을 불법에 귀의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굿이나 푸닥거리는 귀신을 없애거나 쫓아버리는 의식이기 보다는 정겹고 아름다운 축제의 장이다. 인간과 귀신이 하나가 되어 서로 용서를 빌고 또 용서하는 화해의 장이기도 하다.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귀신이 사는 나라에 사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