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부동산 뜨자 주택대출시장 혼탁

전세보증 사기에 고리대금 브로커까지 활개

주택금융공사, 검찰 수사 의뢰… 금융당국도 정밀조사 나서기로




부동산 뜨자 혼탁해진 주택대출시장

법무사까지 브로커… 탈법 행위 조직화


한도 높은 사업자 대출로 유혹… 사실상 고리대금업 경우 빈번

부실 90% 보증 전세자금대출… 서류심사 허술… 사기 증가 원인


# 주택자금의 60%를 주택담보대출로 쓰던 사업자 A씨는 집값의 100%까지 빌려주는 저축은행 사업자 주택담보대출로 갈아타기 위해 최근 대출 모집인을 만났다. 이 모집인은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은 사업자금 용도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에서 받아놓은) 개인 주택자금 대출을 대환(다른 곳에서 빌려 갚는 행위)할 수 없다"며 "담보권 설정도 맡기고 단기간 돈을 융통해주는 법무사가 있으니 소개해주겠다"고 그를 이끌었다.

법무사가 A씨의 주택담보대출을 대신 갚아주고 A씨는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을 다시 법무사에게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자는 1억원을 빌리는 데 하루에 30만원을 달라고 했다. 한 달이면 900만원, 1년으로 치면 원금을 훌쩍 넘는 1억1,000만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이자율이었다.

그러나 급히 사업자금이 필요했던 A씨는 단기간만 쓸 요량으로 법무사에게 이틀 동안 무려 60만원을 지불하고 사업자 주택담보대출로 갈아탈 수 있었다. 법무사가 사채업자를 능가하는 고리대금업을 한 셈이다.

# 인터넷에서 명의만 빌려주면 돈을 준다는 광고를 본 B씨는 광고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광고를 낸 사람은 가짜 임대인과 자신의 일을 도와줄 부동산중개업자까지 데려다놓고 B씨 명의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은행에서는 서류가 모두 구비됐기 때문에 의심 없이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B씨는 서류상 나와 있는 전셋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약속한 돈을 받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출금을 나눠 가졌다. 이들이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대출받은 돈은 모두 77억원. 무려 97차례에 걸쳐 사기를 쳤다. 조직적으로 전세자금대출 사기를 벌여온 이 조직은 8월 검찰에 적발됐다.

16일 금융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전세자금대출 사기와 브로커가 편법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도와주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주택금융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이 가운데 전세자금을 빌리면서 보증사기를 하는 행위 등을 잠정적으로 파악해 조만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공동으로 전면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사업자 대출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의 현황을 파악한 뒤 필요할 경우 혐의가 있는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정밀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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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신문이 파악한 결과 최근 일부 법무사들은 이미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도가 높은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며 사실상 고리대금업을 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이유는 사업자 주택담보 대출을 사업자금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융감독 당국의 지도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은행에 주택자금의 60%를 대출받는 사람이 사업자 주택담보대출로 80%를 대출받아 60%를 갚고 나머지 20%의 자금으로 운영비나 시설비에 사용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존 대출을 대환하기 어려워지면서 브로커들이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주택 대출 과정에서 업무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법무사들이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최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은행과 똑같은 70%로 통합되면서 은행보다 많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저축은행만의 장점이 사라졌다는 점도 한 이유다. 아직까지 대출 한도를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업자담보대출 시장에서 대출을 늘리려는 경쟁이 일어났고 일부 신규 저축은행이나 외국계 저축은행 등을 중심으로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융 감독 당국에서는 사업자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시설자금이 아니라 영업자금이면 기존 대출을 대환하는데 사용해도 된다고 하지만 실제 금감원이 검사 현장에 나오면 시설자금이든 영업자금이든 사업자금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지도한다"며 "실제로 과거 사업자금으로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대환한 사례에 대해 지적 받고 불이익을 당한 저축은행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저축은행들이 이 같은 법무사들의 개입(브로커 행위)을 알면서도 눈 감아 주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감독 당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사업자 대출은 사업자금으로 쓰는 것이 맞지만 모든 대출의 사용처를 추적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담보물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나마 불법·사기 대출이 덜한 편이다.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조직적인 사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셋값 상승으로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신규 전세자금대출은 10조4,0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매달 평균 1조3,000억원씩 증가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0년 12조8,000억원 수준에서 현재 32조8,000억원으로 무려 20조원이나 불어났다.

같은 기간 전세자금대출 사기 액수는 △2010년 15억5,000만원 △2011년 17억7,000만원 △2012년 57억7,000만원 △2013년 59억9,0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셋값이 전례 없이 치솟고 있는 올해는 이같은 행위가 더욱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세자금대출은 부실이 날 경우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90%까지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서류 심사 등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는 점도 전세대출보증 사기 증가의 원인 중 하나다.

금융계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2008년부터 2012년 6월까지 전세자금대출 사기로 의심되는 사례를 걸러 내 다음 주 중으로 대검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 합동 부패척결진단은 서민층 전세대출 실태를 분석, 2012년 7월 이후 76개 업체 343명이 247억원을 부당하게 대출한 정황을 포착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지난 2012년 7월부터 전세자금대출서류를 심사할 때 사업자 번호를 전산화 해 실제 사업장에서 재직 중인 사람인지 검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시점을 전후로 나누어 1·2차로 수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사업자번호 검증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이기 때문에 2차에는 더 많은 사기 의심 사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 되는 시점은 내년 2월로 예정돼 있으며 수사 결과 사기로 판명되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전세대출 사기가 일회성으로 단순하게 일어났다면 지금은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한 조직에서 적게는 두 건에서 무려 열 건의 전세자금대출 사기 의심 사례가 보이는 등 기업형 사기 대출까지 등장하고 있어 엄격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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