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 등 흥행 라인업 갖췄지만 매출 뛰어넘는 제작비에 발목
오디뮤지컬컴퍼니·설앤컴퍼니 자본잠식으로 '감사의견 거절'
손해보면서도 공연하는 악순환… 거품 줄이고 수익 투명성 높여야
대형 뮤지컬사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도산·임금체불 등으로 중소 뮤지컬 제작사의 경영난이 수면 위로 드러난 데 이어 일부 대형 제작사도 취약한 재무 건전성으로 외부감사에서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작비 거품을 줄여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과 함께 제작사가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현재의 산업 구조를 개선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제신문이 대형 뮤지컬 제작사 5곳(오디뮤지컬컴퍼니, 설앤컴퍼니, 신시컴퍼니, 피엠씨프러덕션, CJ E&M) 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말 기준 감사·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오디뮤지컬컴퍼니(이하 오디)와 설앤컴퍼니(이하 설컴)가 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회사 존속 능력에 의문이 든다는 의미다. 주식시장에서 '감사보고서상 감사의견 거절'은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한다. 다만 CJ E&M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은 비상장사라 상장 폐지와는 상관이 없다.
오디는 지난해 31억8,5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내고 부채가 자산을 212억3,500만원 초과한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컴 역시 지난해 7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고 부채가 자산을 137억원 초과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두 회사 모두 캣츠, 오페라의 유령, 지킬앤드하이드, 드림걸즈 등 흥행 라인업을 갖추고 있지만 높은 매출원가(제작비)와 투자 손실 탓에 수익을 내지 못했다. 오디는 지난해 공연 수입을 중심으로 총 153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출연료를 비롯한 매출 원가 126억원과 판매·관리비를 떼면 영업이익은 15억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각종 이자와 투자 손실금이 더해져 31억8,500만원의 당기순손실이 났다. 설컴은 공연 티켓과 상품, 협찬 수입 등으로 270억원의 매출을 냈지만 매출 원가로만 281억원이 빠져나갔고 기타 비용(25억원)이 추가돼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공연투자금 219억원을 손상차손(가치 하락을 우려해 장부상의 손실로 기록) 처리하며 당기순손실이 불어났고 투자사의 사업 철수에 따른 정산 문제(강제집행)로 우발채무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 뮤지컬 시장이 제작사가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온 점 역시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설컴 관계자는 "2000년대 말부터 투자자들이 흥행 검증 작품에만 몰리고 있다"며 "외부 투자가 부진한 작품은 제작사가 높은 지분을 가져가다 보니 흥행 실패 때 입는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반대로 흥행작은 제작사의 지분이 적어 수익을 올려도 제작사에 돌아오는 돈이 거의 없다. 많은 제작사가 최근 몇 년 사이 손실 폭을 키운 원인이다. 이 관계자는 "제작사의 부담을 키우는 방향으로 지난 10여년간 이 시장이 흘러왔다"며 "뮤지컬 시장을 더 키우고 산업으로 발전시킬 논의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이를 주도할 대형 플레이어가 전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감사 적정 의견을 받은 신시컴퍼니는 매출액 274억원, 영업손실 26억원, 당기순손실 25억원을, 피엠씨프러덕션은 매출액 246억원, 영업이익 34억원, 당기순이익 21억원을 기록했고 두 곳 모두 자본잠식은 없었다. 공연과 방송·음악·영화·게임 사업 부문을 합친 CJ E&M의 지난해 매출은 1조2,327억원, 영업손실은 126억원이었다. 이 중 공연 사업 부문은 매출액이 147억원, 영업손실은 99억원이다.
업계에서는 대형 제작사의 자금난이 그동안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진행 중인 문제였다고 입을 모았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다수의 제작사가 매년 손실을 보고 있지만 연간 국내 뮤지컬 제작 편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회사 규모를 떠나 부채 상환을 위해 작품을 올리고 손해를 보면서도 다시 공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뮤지컬 시장의 체질개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재무건전성을 키우고 매출·수익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