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12-13(토.일) 무박, 맑음
참가자: 총 22명: 솔로팀 멤버(16명); 김부경, 김승호, 김화영대장, 김형춘, 백민기, 이강민, 이미환, 이재옥 회장, 이순례, 안병인, 유범수, 임춘자, 차순미, 최승은, 채희묵 , 황재숙, 비회원 (6명)
사당역 출발 (23:05) – 죽암 – 현풍 (3:00-25) – 유가사입구 주차장 (3:45-4:40)- 주차장 출발 (4:50) – 조망대 (5:55) – 용연사가는 삼거리(6:25) – 정상(7:00) – 대견사지 (7:40-8:20) – 소재사 입구(9:35) – 주차장 (9:50-11:10) – 신탄진 – 사당역(3:40)
총 22명밖에 안되어 자리가 헐렁헐렁하다. 한 사람이 두 자리씩 잡아 다리를 쭉 뻗고 갈 수 있어서 좋다. 죽암에서 기지개 한 번 켜고 현풍 휴게소에 이르니 3시. 준비 할게 있으면 이 곳에서 보충하란다.
비슬산 끝자락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이고 듬성듬성 가로등이 새벽녘이라 졸리는지 초점없는 흐리멍텅한 불빛을 발산하고 있다. 20여분 산촌길을 달리니 유일사 입구 주차장이다. 너무 일러 한시간 가량 더 잠을 재운 후 하차시킨다. 한 팀이 주차장 바닥에서 컵라면으로 시장끼를 메우고 있다. 물론 군침이 돈다.
하늘이 맑지 않은 모양이다. 작년 4월 13-14일 별유산 무박 산행때 초롱초롱한 별들을 볼 때와 다르다. 큰 별 몇 개만 등급은 낮추어 빛나고 있다. 그때는 별들이 아무때나 무박으로 산에 오면 서로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역시 하늘의 뜻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비슬과 금슬
산행은 5시 조금 못 미쳐 시작했다. 날씨는 제법 싸늘하다. 어둠은 한시간 정도 지나야 걷힐 것 같다. 어제 막이 오른``제7회 비슬산 참꽃제``란 플래카드가 길 입구 여러 현수막 중에서 돋보인다. ``琵瑟山 瑜伽寺``란 현판이 있는 육중한 일주문이 씨멘트 길을 들어서자 마자 우리 일행을 맞는다. 불자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합장.
비슬은 4-5줄의 비파와 25줄의 또 다른 현악기로 중국의 악기들을 말한단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김실장은 바로 ``금슬``이라는 단어를 연상한다. 가야금(금:琴)과 25현 비파(슬:瑟)는 서로 소리가 그렇게 잘 어울린단다. 부부사이가 좋은 것을 말할 때 쓰는 ``금슬``이 여기서 나왔다며 시의적절한 멘트를 한다. 그런데 이 솔로팀은 이름에서 벌써 나타나지만 금슬이라는 코드와는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다 솔로로 왔으니까.
비슬산은 정상에 있는 바위가 신선이 비슬(고대 중국의 현악기)을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여튼 발음 자체만해도 아름답고 신비스럽다.
왼쪽 길 툭 떨어진 아래로는 전나무가 간간이 어디서나 그렇듯이 듬직하게 쭉 뻗어 서 있고 오른쪽 위로는 소나무가 산속으로 들어 서 있다. 유가사 절이 오른쪽 숲속으로 들어 서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면서 수도암인 큰 절집 하나가 길옆 오른쪽 산위에 보인다. 조금 더 길을 가더니 김화영대장이 멈춰서 땀이 날테니 한 겹 허물을 벗으란다. 그러더니 씨멘트 길을 버리고 숲속으로 가로 지른다. 김실장의 후래시 불빛을 의지하여 앞만 보고 돌길을 계속 오른다. 선두가 빨라지면서 두 그룹으로 나뉜다.
공터가 나와 다 함께 한 번 숨고르기를 한다. 백민기님이 힘들어하는 두 젊은 여성 멤버인 차순미님과 최승은님에게 재미있는 얘기 해 주며 가파른 오르막길의 힘을 반감시켜 주려 애쓴다. 소나무 두 그루가 앞에 있는 바위에 서니 주차장과 주위의 시야가 넓어진다. 민두름하니 편안해 보이는 산이다. 5:30. 너덜길은 계속 된다. 해발 500미터에서 시작했다지만 정상이 1,000미터가 넘고 보면 간단치 않다. 가파른 길이 계속된다. 또 하나의 조망대에 이르니 5:55분. 시야는 더욱 넓어지고 옆 오른쪽에 깎아지른 바위가 보인다.
도성암은 낌새도 못채고
도성대사가 창건했다는 도성암과 그가 도를 닦았다는 도통바위는 그냥 지나쳤다. 해 지난 억새들이 나타나고 이내 ``능선 삼거리``에 이른다. 북으로 용연사와 남쪽 정상으로 가는 삼거리. 초행자에게는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6:25분. 비슬산 정상 2km, 유가사 3km, 도성암 1.1km, 용연사 8km, 약수정 5.5km.
북쪽으로는 능선이 앞산(고유명사임)으로, 남쪽으로는 정상, 대견사터와 조화봉으로 이어지는데 주능선에 키가 큰 나무가 별로 없어 초원 같이 시야가 탁 트여있다. 이 능선이 가을이면 억새, 봄이면 진달래가 장관을 이룬단다. 특히 대견사 터에서 988봉에 이르는 산자락 30 여만평(100ha)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평전 (平田: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하면 이 곳을 말한단다.
여기서부터는 평평한 길이다. 바람은 싸늘하고 솔 나무 사이로 진달래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꽃은 아직 피울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미리 예견을 했던 터다. 지난 식목일 수락산을 의정부 우성아파트 쪽에서 오르는데 3부능선 정도 (시간으로 30분 정도)밖에 진달래꽃이 없었던 것이 기억난다. 좌우로 진달래가 더 많아지고 억새가 사이사이를 메꾼다..
어떻게 이렇게 드넓은 진달래 밭이 생길 수 있을까? 지난번 월출산 억새 밭에 세워 놓은 안내판에 써 놓은 산 식생의 발달 과정이 생각난다. 참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다 산불이 나면 그 자리에 억새가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관목인 싸리나무등이 바꿔 서고 다시 교목인 참나무가 자리를 빼앗으며 식생이 생성 소멸한단다. 그러니 이 곳에 대규모 관목인 진달래가 들어 서기 전 억새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참나무 밭이었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억새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이론을 뒷밭침해 준다. 억새가 진달래 관목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다 많이 빼앗기고 말았다는 얘기다. 언제 쯤에 불이 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쯤 진달래가 없어져 지금 이야기를 전설처럼 생각하면서 후손들이 등산을 할까?
등산 경력이 미천한 나로서는 가 보지 못한 여수의 영취산과 민주지산의 진달래밭도 이러겠거니 생각만 해 볼 뿐이다. 하기야 북한산 진달래 능선의 진달래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진달래를 논하기는 너무 이르다.
정상에서 정상주
이런 생각에 젖어 가다 보니 이내 비슬산 정상에 이른다. 7:00.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대피소에 다 들어 간다. 그 뒤로 최고봉을 알리는 바위 위로 높게 표지바위가 서 있다. ``비슬산 정상 1,083.6m.`` 짝지어 다니던 순미, 승은님이 독사진 후 두엣으로 다시 포즈를 취한다. 젊음에다 진달래 꽃보다 더 이쁜 모습이 송혜교는 저리 가란다.
정상에 서면 증거용으로 표지석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필수. 이 순례님, 임춘자 님, 이 미환 총무대행 보이는 몇분과 함께 바람을 맞으며 바위에 둘러서서 한 컷 부탁했다.
남쪽 코앞에는 수직의 바위가 육질의 건너편 진달래밭을 배경으로 그림같이 서 있는데 진달래밭은 꽃이 없어 다소 황량한 기분이 든다. 서쪽으로는 경사가 급하고 바위와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석유냄새 요란한 조그만 대피소에 발들일 틈도 없다. 추위도 물리칠 겸 정상주(頂上酒)라며 고추장에 오이를 안주로 위스키를 한 잔씩 따라준다. 허기진 배에 알코홀이 들어가니 전신이 짜르르… 이 재옥 회장님은 한잔씩 하면 활짝 핀 진달래가 보일거란다. 만개했다면 식목일 수락산 자락에서 듬성듬성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않되겠지만 그것만이라도 떠 올리는 수 밖에… 아쉬워하는 마음은 너 나가 없는 것 같다. 이정표에는 휴향림 7.7km, 앞산 1.6km, 조화봉 4km, 칼바위 3.5km, 도성암 1.5km, 용천사 3km.
강해진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뚝 떨어지면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파카들을 꺼내 입으며 발길을 조화봉쪽으로 서두른다. 헬기장이 있는 정상 공터를 빠져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나지막한 비석을 옆에 두고 무덤이 아담하게 가꾸어져 있다. 후손 중 대통령이라도 나올 명당자리가 아니고서야 이 높은 곳을 묘자리로 잡았을 리 없을 텐데 상여를 메고 어떻게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추워서 누구 묘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지나쳤다.
진달래 평전은 아직 겨울
이내 북서쪽으로는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되는 대견봉, 778봉을 지나 헐티재로 내려가는 길로 나누어지는 삼거리가 나오면서 남쪽 능선을 계속 따라간다. 억새와 진달래가 더욱 많아진다. 그러나 지금은 꽃이 없어 연회색의 스산한 가을 내지 초겨울 분위기이다.
1,000미터가 넘는 산이고 보면 바람많은 건 당연 지사. 그래서 야산의 것과는 달리 키가 가지런하다. 키를 더 세웠다가는 온전치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서로 바람막이를 해줄 요량으로 키를 맞췄을 것이다. 988봉에서 대견사에 이르는 길에는 지나는 좁은 오솔길만 빼놓고 촘촘히 계속 서 있다. 만개되었다면 가히 황홀지경으로 빠져 들 것 같다. 어린시절 보리밭 논두렁을 걸어갈 때 양옆으로 내 키의 진달래가 보리처럼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남서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진달래 평전. 어쩌다 한그루씩 서 있는 소나무가 연회색 일색에 생기를 불어 줄 뿐이다. 청색 깃발이 나부끼는 깃대가 하나 높이 보인다. 이 회장님은 산불예방을 위해 건조 정도를 표시하는 거란다. 가까이서 보니 아마추어 클럽 무선국 안테나다. 나도 지난 79년에 아마추어무선국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의 무선국 부호는 HL1XN (phonetic code로는 Hotel Lima number one X-ray November). 무선에서 알파벳을 그대로 말하면 잘못 알아 들을 수 있어 제일 쉽게 첫자를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로 말하는 데 이것이 바로 phonetic code. HL은 한국고유 call sign (호출부호). 북한이 떼를 쓰는 바람에 국제 전기통신연합 (ITU)은 남한의 아마추어용 국가부호 HM을 북한에 넘겨주어 우리의 아마추어 부호는 공영방송의 부호와 통합되었다. 1은 서울. XN은 본인의 무선국 고유 부호.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이 HL1XN라는 호출부호는 하나밖에 없다. XN은 면허를 얻은 순서다. 처음 서울에서 딴 사람은 HL1A. 26번째는 HL1Z. 그 다음 AA~AZ 그 다음은 AAA-ZZZ… 그러니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688번째 무선국 허가를 받은 사람이다. 지금은 수 십 내지 수백 만명이 될 테니까 나는 희귀종, 천연기념물, 아니면 박물관용이나 다름없는 OB 아마추어 무선국 소유자다. ``달성 햄 동우회``가 참꽃 축제 기간 동안 클럽국을 운영중이란다. 클럽국은 0을 쓰고 있다.
대견사지
안테나 아래 철계단을 내려서기 전에 넓은 공터가 보이고 앞이 툭 터져 시야가 시원하다. 공터 남쪽 경사진 너럭바위 끝에는 3층 석탑이 이단 돌 울타리안에 불안스럽게 얹혀 있다. 탑과 절은 실과 바늘사이. 대견사지(大見寺趾)란다. 해발 1,000여미터나 되는 곳에 절을 세웠으니 어느 스님인지 모르지만 대단한 불심이다. 언제 폐허가 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바닥재로 쓰였음직한 돌들이 여기 저기 있다. 그러나 주춧돌로 보이는 돌은 없어진 것 같다. 뒤쪽 높은 바위벽에는 연화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머리 잃은 마애불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무슨 글씨라도 있는지 탁본을 뜨느라 약간 빛 바랜 검은 먹물이 묻어 있다. 두 바위사이로는 굴이 있어 그 옛날 구도 승들이 좌선(座禪)을 했음직하다.
우리는 바위밑에 모여 앉아 김밥 등 아침거리를 풀었다. 떡 몇 가락을 가져 왔지만, 김밥 한 개, 떡 한 개, 백민기님이 준 감자 두개를 먹으니 적당하다. 아래 자연 휴양림 주차장에서 돼지 불고기가 있다니 많이 먹으면 내려가서 낭패다.
바위 아래는 움푹한 곳에 활짝 핀 연꽃의 화강암 연화석이 있는 걸 보면 앉았던 주인인 부처님도 있었을텐데… 겉을 보면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왓장 파편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더 유실되기 전에 한번 발굴 조사를 해 봄직한데 현재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다.
아담한 탑은 균형감있게 층이 올라가 있으나 상륜부 (머리부분)는 없어졌다.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1,2,3층 옥개석(지붕돌) 처마가 네 겹이나 되는 걸 보면 통일 신라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것은 홋 처마가 주를 이뤄 차이가 확연하다. 안내판에는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 다시 쌓아 놓았다고 쓰여 있다. 정상에서 못 찍은 단체사진을 위해 탑을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철계단 옆에는 샘물이 있어 옛날 이 절에서 식수로 썼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지금은 지나는 산행객들의 목을 축여 준다. 그 옆에는 클럽 무선국 운영자들의 간이 막사가 있고 한 사람은 교신에 바쁘다. 그 옆으로는 두어 길이나 되는 입간판에 그 주위에 있는 여러 모양의 바위와 이름을 그려, 써 놓고 실제 숨은 바위 찾기를 해 보란다. 스님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거북바위, 백곰바위, 말바위… 하나같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빚어 논 바위들이다.
씨멘트길이 산허리를 돌아 이 곳까지 나 있는 게 보인다. 유가사 입구에서도 똑 같은 씨멘트 길을 보았는데 이 비슬산은 일찍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말일께다. 차를 끌고 편리하게 올라 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많을 거라는 것은 불 보듯 훤하다.
하산 및 축제인파
여기서부터는 자연 휴양림 주차장을 향해 계속 하산이란다. 예정에 있었던 톱바위와 조화봉은 생략된 것 같다. 8:20분. 무릎이 힘을 덜 받도록 스틱을 꺼냈다. 건강을 위해 산을 오는데 쿵쿵 내려오다 무릎이 망가지면 안 오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재사 쪽에서 하나 둘씩 올라온다. 양쪽으로는 송림이 들어 서 있다. 생강나무가 삼지창 같은 잎이 나오기도 전에 깨알 같은 노란 꽃을 달고서 여기저기 서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진달래에 실망하지 말고 제 얼굴이나 실 컷 보란다. 고도가 낮으면서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많이 나타난다.
임춘자님, 이 순례님과 보조를 맞추면서 김형춘님과 후미가 됐다.
내려올수록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다. 오늘은 7년 째 맞는 달성군 참꽃 축제 이튿날. 어제 산신제, 사물놀이, 퓨전타악 공연으로 막을 올렸으나 진달래가 없다는 것을 올라오는 사람들도 알고 가는지 궁금하다. 소재사에 가까워지니 한 두어 그루 씩 연분홍 꽃을 핀 진달래가 보인다. 그래도 흥을 돋우기에는 조족지혈이다.
양 길가에는 달리아 등 꽃꽂이로 화사하게 단장해 놓고, 입상한 사진으로 비슬산의 비경들을 보게 한다. 진달래밭이 정말 아쉽다. 갖가지 간이 음식점이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큰 샘물에 와서 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였다.
돌들의 향연도 볼만해
내려오는데 모가 다 깎인 큰 돌들이 군락을 이루는 골짜기가 있는가 하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바위도 내려오면서 발아래 유달리 많이 보였다. 그러더니 오른쪽 산자락에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각진 큰 바위들이 경사면을 따라 군락을 이룬 곳도 두 번이나 나타난다. 이 돌의 곳곳에 정성들여 작은 돌을 쌓아 돌탑을 만들어 놓았다. 몇몇 뒤쳐진 사람끼리 디카에 한 컷 담아 보았다. 진달래 외에도 다양한 돌들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세가지 종류(너덜길의암괴류, 애추, 토르)의 돌을 소개하는 안내판까지 설치해 놓을 정도다.
소재사를 지나쳐 (9:35) 휴양림 주차장에 이르니(10:00) 상춘객들이 가족단위, 연인끼리, 친구끼리 물밀 듯 올라 온다. 대부분 시끄러운 경상도 사투리인 걸 보면 달성을 포함한 대구 사람들인지 싶다. 주차장 맨 끝 코너에 먼저 온 멤버들이 양념한 돼지불고기를 세 곳에서 굽기 시작하고 다들 둘러 앉아 소주와 함께 젓가락이 바빠진다. 전에 없었던 일로 특별히 기분을 돋구기 위해 준비해 온거란다.
주차장에서 돼지 불고기 파티
총무대행 미환님, 처음 본 재숙님, 형춘님이 구어댄다. 양주까지 가져와 정상주를 하게 한 재숙님을 타겟으로 공격의 화살이 많이 가는 걸 보면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 멤버인 듯 싶다. 백민기님을 포함 서로 기쁨조 하겠다며 한마디씩 거든다. 역시 분위기 메이커들.
김대장님이 마음을 넘쳐 따르는 거라며 갑자기 컵에 큰 페트병 병주둥이를 쳐박아 가득 술을 따르니 미환님이 기절 초풍이다. 형춘님은 아무래도 모처럼 외기러기가 돼 그런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언영천사를 생각하는게 말에서도 쉽사리 읽을 수 있는데 집에서 쉬는 천사는 알고 있는지! 연수에 지친 나머지 감기가 깊어 총무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못했단다. 진달래가 피지 않은 것은 한기원님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회장님의 말씀인데 꼭 책임을 통감하시길… 춘천에서 오신 유범수님은 돼지 불고기는 제대로 드셨는지 술도 많이 즐기시지 않는 것 같아 조금 불안…
인천에서 오셨다는 여자분과 다른 남자 한 분의 행방이 묘연해 찾다보니 죽이 맞아 곳곳을 다 훑고 늦게서야 도착, 치우려던 불판을 다시 켜기도 했다. 고액의 연봉이라도 제시해 멤버로 영입하면 솔로팀을 듀엣팀으로 만들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소주대신 진달래로 담근 두견주라도 있었으면 눈으로는 못 즐겼어도 입으로라도 즐길 수 있었을텐데. 이백과 두보도 진달래 술을 마셨다는 걸 보면 역사가 꽤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달래가 참꽃?
말이 나온 김에 꽃이름 한마디 걸치고 가야겠다. 이 곳 경상도에서는 진달래꽃을 참꽃이라고 한다는데 이는 형제지간인 철쭉을 개꽃이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이 있어 먹을 수 없어 개꽃이 됐고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는데 인간위주로 붙여 놔 철쭉은 화가 난단다. 진달래 얘기가 주가 되는 이 마당에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겠다만 이유가 있어 독을 좀 품었을 뿐이란다. 항상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하란다. 인권, 여권 신장에 이어 요즈음은 동물권 (animal right)이란 말도 쉽사리 들리는 걸 보면 식물권 (plant right)도 얼마 있지 않으면 나오게 될 것이다. 참꽃보다도 두견주란 말처럼 두견화로 하면 두견새와 어우러져 듣기도 좋은데 꼭 참꽃이라고 하여 철쭉을 모독하는 느낌을 주냐는 것이다.
그 뿐인가. 개나리라는 이름도 옛날 개똥이 쇠똥이 하는 식이다. 개라는 말이 ``야생`` 내지는 ``몹쓸`` 것이란 의미이다. 거기다 나리라는 이름은 물푸레과이니 전혀 관련이 없다. 의미가 없는 이 이름으로 얼마나 괴로워 하는지는 본인인 개나리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다. 황금종 (golden bell)이라면 연상하기도 좋고 얼마나 이쁜가. 때죽나무가 영어로 snow bell인 것은 말 그대로가 꽃을 그려 볼 수 있어 좋다. 안개꽃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영어로 보면 재미있다. Baby`s breath (애기 숨: 어린애 숨결만 만나도 흔들릴 정도로 조그맣다는 뜻). 식물권에서 제이름 찾아주는게 제일 급선무같다.
출발
실 컷 먹고 나 차에 들어오니 이 강민님은 어느새 들어와 한 잠 주무셨나? 출발 시간 11:10분. 우리가 지나왔던 산등성이가 오른쪽으로 보이고 한 정상이 조금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니 우리가 올라 갔던 바로 그 비슬산 정상이리란다. 길다란 탁자를 올려 놓은 듯 한데 그것이 산이름을 만들게 했다는 비슬모양이란 뜻인가 보다. 김승호님은 어느새 냉장이 잘 된 참 소주 여러병을 사 가지고 들어와 앞에 내 놓는다. 이얘기 저 얘기 하며 오느라 창밖을 볼 겨를도 없었다. 언듯 언듯 노란 개나리, 하얀 조팝나무, 배꽃도 절정으로 치닫고, 벚나무, 진달래 등 봄꽃들이 보인다. 사당역에 도착하니 3시 40분 해는 중천에 있다. 이 회장님 등 회원 7-8명이 서성거린다. 남은 불고기로 한잔 할 태세다. 귀가하면 이 회장님 사모님 얼굴은 진달래 꽃처럼 환하게 웃고 계실까?
에필로그
항상 다녀오고 나면 못 보고 온 게 너무 많고, 본 것도 술에 취해 필름이 끈긴 것처럼 중간 중간이 날라가 버린다. 가는 길목인데 절하나도 못들린게 서운하다. 진달래는 최소한 금주는 지나가야 제 맛이 날 것 같다.재미있게 등산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회장님, 김대장님 그 외 여러분들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진 띄우는 것은 오늘 밤에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직 숙달이 안되어 불안합니다.
끝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