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인력빼가기는 도둑질

"업계에서 우리 회사를 '인재사관학교'라고 하더군요. 겉보기에는 칭찬 같지만 실상은 속 끓는 이야기입니다. 3~4년 투자해 사람을 키워두면 일할 만할 때 대기업으로 쏙쏙 빠져 나가니 답답할 노릇입니다."(전지부품 제조업체 임원 A씨)

중소기업들이 '인력 빼가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핵심 인재 유출은 기술 유출과 결부되고, 이는 작은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을 걱정할 만큼 치명적이라는 게 피해 기업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최근 10년간 키운 엔지니어링 인력 2명을 대기업에 뺏긴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인력을 빼갈 때 스포츠선수처럼 고액의 이적료라도 보상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며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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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적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쓸만한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대기업들의 행태가 도를 넘어서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기계산업진흥회, 동반성장위원회 등은 대기업의 인력 스카우트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도 지난달 말 공동으로 '기술인력 유출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니 근로자들의 이직을 마냥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지금보다 나은 경제적, 정신적 보상을 주겠다는 제안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중소기업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력 풀로 취급하는 인식은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 스스로 인재양성은 등한시 하면서 양질의 신규인력 공급을 중소기업에 미룬 채 과실만 따먹는 것은 노력 없이 남의 것을 탐하려는 '도둑질'과 다름없다.

대ㆍ중기 상생 차원에서도 인력 빼가기는 심각한 문제다. 앞에서는 동반성장을 외치고, 뒤로는 여전히 인재를 빼내가는 상황에서 과연 동반성장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더욱이 인재유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위기는 부메랑처럼 대기업에 돌아온다. 산업의 뿌리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결국 세계시장에서 대기업이 가진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더 이상 '사람이 없다'는 중소기업계의 속앓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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