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무늬만 번지르르한 '원화국제화'

조만간 정부는 원화국제화의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원화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원화환율의 안정에도 기여할 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간 통화 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게 경제부총리의 설명이다. ‘국제통화’란 말 그대로 ‘국제적인 통화’가 되는 것을 말한다. 상당 부분의 국제 무역 및 자본거래가 그 통화로 결제되고 또 많은 국가들이 그 통화를 부의 축적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세계 무역거래의 약 45%는 미국 달러로 결제되고 있고 유로화 결제비율도 약 20%나 된다. 일본 엔화와 영국 파운드도 각각 11%와 7%를 차지하고 있다. 결제비중 낮아 현실성 없어 각국의 중앙은행이 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국제통화의 비중은 미국 달러가 약 65%, 유로화가 15%, 그리고 일본 엔화가 5%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달러나 엔화, 유로화는 국제통화라 할 만하다. 이런 국제통화는 그 나라의 1등 국가적 위상을 잘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원화국제화 방침이 자꾸 냉소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첫째, 너무 잦아서 참신성이 없다는 점이다. 원화의 국제화는 80년대 말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론되기는 했으나 국가적 정책 어젠다로 선전홍보된 것은 문민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이 최초일 것이다. 즉 ‘우리나라가 국제화 개방화에 대비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대비하기 위해’ 원화국제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당시 원화국제화의 이유였다. OECD에 가입(96)하고 난 이후인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오는 2011년까지 홍콩과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3대 아시아 국제금융시장을 만들기 위해’ 원화의 국제화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었고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와 동북아금융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원화국제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원화국제화는 OECD 가입을 위해서 필요했다가, OECD 가입을 하고 나서는 아시아 3대 금융시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더니,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동북아경제중심과 동북아 금융허브를 위해 필수적이고 또 원화환율의 안정과 아시아국가간 통화통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과제를 놓고 모든 정부가 말로만 서로 다른 잔치를 벌여온 것이다. 둘째, 원화의 거래현실이 국제통화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대외무역거래에서 원화로 결제되는 비중은 5억달러 내외(2002년)로 총 무역의 0.2%에 불과하고 무역외거래도 0.3%에 못 미치는데 이는 전세계 무역의 0.007%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한국은행의 결제통화별 외환거래자료에도 원화표시결제 통계는 기타통화로 처리되고 있을 뿐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전체 수출의 35%, 그리고 수입의 25% 정도가 엔화로 표시된다.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의 원화사용은 더 저조해서 비거주자에 의한 원화채권투자나 원화채권발행은 전체의 0.2%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교과서적 정의대로라면 원화의 국제화는 말 그대로 요원하다. 2011년은커녕 2020년이 돼도 원화의 국제화는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환율하락 부추길 가능성도 그러나 진정으로 원화국제화 정책의 발표에 대해 우려하는 점은 다른 데 있다. 하나는 색다를 것이 전혀 없는 내용의 그 발표가 원화환율의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 통화의 국제화는 대개 그 통화가치의 강세와 결부되기 때문에 장관의 그 발표는 암묵적으로 환율정책에 대한 정부정책의 예고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환율의 하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하나는, 원화국제화는 정부가 하자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국가와 경제와 국민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새로운 내용도 별로 없으면서 대단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인 양 무늬만 번지르르하게 침소봉대하는 당국의 구태의연한 행태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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