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1일] 존경받는 과학자

부부는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렸다. 독일 과학자 륀트겐의 X선 발견에 자극받아 연구에 몰두하던 퀴리 부부는 1898년 12월21일 성과를 발표했다. ‘라듐’의 발견이다. 학계가 반신반의하자 부부는 남편 피에르의 학교 자재창고로 짐을 옮겼다. 비가 새고 배기장치도 없는 헛간에서 분리작업을 맡은 아내 마리, 퀴리 부인은 매일 20㎏이 넘는 광석을 곤죽처럼 녹이기 위해 키보다 긴 쇠막대를 온종일 저어댔다. 3년 반에 걸친 실험 끝에 부부는 1데시그램(0.1그램)의 라듐 추출에 성공했다. 퀴리 부부는 떼돈을 벌 수 있었다. 고가의 라듐 추출법을 독점한 상태. 가난했던 부부는 돈보다 명예를 택했다. 추출 과정이 모두 공개돼 인류의 공동자산이 된 라듐은 수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이듬해인 1903년 부부는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피에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마리는 스캔들에 휘말리면서도 연구를 계속해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1차 대전이 터졌을 때는 야전 방사능센터를 세워 부상자들을 돌봤다. 퀴리 부인의 연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의 실험 노트는 오늘날까지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다고 전해진다. 사인인 백혈병도 누적된 방사능 피폭에서 왔다. 삶과 죽음을 과학의 한복판에서 보낸 셈이다. 과학이 거짓과 불신을 증폭시키는 세태에서 퀴리 부부의 과학적 업적과 도덕적 유산은 더욱 빛을 발한다. 마리는 ‘사치와 부를 미치광이처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과학이 인간 사회의 가장 가치 있는 정신적 유산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퀴리 부인을 위한 헌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저명인사 가운데 명성 때문에 부패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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