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창간40돌 특집/해외전문가에 듣는다] 프레드릭 미쉬킨 교수

[창간40돌 특집/해외전문가에 듣는다] 프레드릭 미쉬킨 교수"저력의 한국 20년내 선진국 진입할 것"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프레드릭 미쉬킨 교수는 한국 경제의 기본 저력을 감안할 때 앞으로 20년안에 선진국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인프라 스트럭처(경제 하부구조)를 제대로 구비한다는 전제하에. 시장경제 원칙에 따른 법의 엄정한 집행, 국제수준에 맞는 기업의 투명성 제고 등이 이뤄진다면 한국이 선진국대열에 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미쉬킨 교수의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다. 현재까지의 한국의 개혁작업을 높이 평가하는 미쉬킨교수는 그러나 개혁 및 경제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자기만족(COMPLACENT)」상태를 경계했다. 대부분 국가가 자기만족에 빠져 개혁 작업을 미루다가 주저앉곤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등 신흥시장의 부침(浮沈)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미쉬킨교수를 컬럼비아대학의 연구실에서 만나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한국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라는 의외의 사태를 맞았다가 불과 2년만에 빠른 경제회복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장래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것같다. IMF사태 전후의 한국경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한국의 경우 IMF사태를 맞은게 경제의 근본적(펀더멘털)인 문제에 원인이 있었다기 보다는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IMF사태 이후 한국이 재빨리 금융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빠른 경제회복을 기록한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금융부문의 위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만 해도 19세기부터 거의 12년만에 한번꼴로 금융위기가 발생했었다. 최근의 경우 80년대의 저축대부조합(S&L) 문제라든지, 90년대 후반의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건 등이 좋은 예다. 경제상황이 변화하는 데 대해 금융부문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거나 금융감독이 미흡하게 되면 금융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느냐는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아주 과감하고 신속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 부실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부실부분을 과감히 정리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미국도 사실 1980년에 발생한 S&L문제를 89년에 가서야 정리할 수 있었다. 일본은 아직도 금융분야의 부실한 부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한국보다 기본적으로 바탕이 튼튼하기 때문에 아직 버티고 있지만 현재까지 금융부문에 대처하는 모습은 한국이 훨씬 낫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 대해 최근 신용위기 재발 가능성이라든지, 부진한 기업개혁같은 문제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편인데. ▲기본적으로 한국 경제는 다른 국가들이 갖지 못한 강점을 많이 갖고 있다. 교육수준이 높은 고급인력이 풍부하고 노동자들의 직업윤리도 강하며 최근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점도 강점이다. 덧붙여 지금까지 경제정책도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집행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추세를 계속 유지해 나간다면 한국이 앞으로 20년 이내에 선진국대열에 동참하지 못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인프라 스트럭처를 갖춰나가는 일이다. 기업 등의 자료 공개(DISCLOSURE)·법적 제도정비·회계·파산제도·금융감독제도·기업지배구조 등을 국제수준에 맞춰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 시장경제원칙이 충실히 지켜질 수 있는 인프라 스트럭처만 제대로 정비한다면 한국이 충분히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걱정되는 것은 경제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자기만족」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인프라 스트럭처 정비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항상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대처해야 하는데 어느 나라에서나 자기만족현상이 나타나 지속적인 발전의 기회를 놓치곤 한다. -교수께서는 한국경제의 잠재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셨는데 사실 아직 기업개혁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또 부실한 기업부문의 비중이 워낙 커서 이를 섣불리 처리했다가는 자칫 경제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걱정이 많은 상황이다. ▲기업문제는 철저히 시장에 맡겨둬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역시 시장에서 판단하게 놓아두는 게 바람직하다. 대신 정부는 금융시스템의 정비에 주력해야 한다.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면 아무리 큰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그 영향이 전체 경제에 파급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정부가 할 일은 금융개혁을 서두르는 것이고 개혁을 통해 금융시스템이 자리잡으면 기업부문은 금융시스템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는 것이다. 기업부실도 파산법을 정비해서 회생가능성을 정확히 판단해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부실한 부분을 잘라내는게 중요한데 이를 판정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는게 선결 과제다. 기업부실이 결국 채권단, 즉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서둘러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부실채권을 정리할 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지며 생존가능성을 판단해 해당 기업을 잘 경영할 주체를 찾아내는 일 등을 자본주의 원칙에 맞게 제도적으로 해내야 한다. 대마불사는 자본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다. 또 부실한 부분에 계속 자금을 투입하면서 시간을 끌 경우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부실문제는 빨리 처리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부실규모가 적지않기 때문에 이를 서둘러 처리하려고 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국의 경제규모가 크지 않아 부실부문을 정리해 매각하려고 해도 내부에서는 수용하기 힘들고 외국 자본이 들어와 줘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를 청산하자니 경제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파산제도라는게 기업의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채권단과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일정 부분 손실을 감수하면서 남는 부분을 건지는게 결국 이득이 될 것이다. 당장 급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준 뒤에 적정한 경영진을 찾아내 계속 운영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의 손실 부담을 전제로 매각해 채권을 회수하는게 파산법의 근본 원칙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손실부담률·책임소재·경영진 문제 등을 결정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과제다. 다행히 현재 세계 경제가 좋은 상태고 특히 미국 경제가 활황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는 정말로 해외자본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을 끌면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칠레의 경우를 보자. 칠레의 금융위기 당시 부실의 비중이 한국보다 더 컸다. 그러나 법률제도를 정비하고, 국제수준의 은행감독기준을 만들어내고 중앙은행의 독립을 보장하며 재정문제를 해결한 결과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개혁을 하고 인프라 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국민에게는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인기를 얻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정책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이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한국도 나름대로는 각종 제도를 구축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인프라 스트럭처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라마다 다른 문화, 다른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제도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같다. 꼭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원칙은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시장경제원칙에 입각한 법률의 엄정한 집행(ENFORCEMENT)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정치권 등 이해집단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사실 어려운 문제다.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집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구조조정에 다른 실업의 증가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실직자에 대한 재취업교육이라든지, 소외계층을 위한 주택정책 등 사회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이 구조조정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 사설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간의 유대관계가 아주 강한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소 다른 문제지만 한국의 경제회복은 수출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외환시장을 놓고보면 원화 환율이 외환수급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이 강해 실제 구매력대비 환율수준과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 개방경제하에서 구매력으로 평가한 환율과 외환수급상으로 나타나는 실제 환율과의 갭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환율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환율을 정책목표(NOMINAL ANCHOR)로 삼을 경우 적절하게 대응하기 곤란해진다. 이로 인해 원화가 저평가될 경우 외화부채규모가 늘어나 또다른 위기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보다는 물가목표(INFLATION TARGET)를 설정, 이를 지켜나감으로써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게 중요하다.입력시간 2000/08/08 16:36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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