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SK글로벌에 대해 청산형 법정관리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가운데 일부 채권은행들은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SK측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맞서고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통상 기업구조조정을 할 때 마지막 압박용으로 사용하는 `법정관리` 라는 카드를 너무 일찍 꺼내는 바람에 협상 보다는 대립 일변도의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가장 큰 원인은 SK측의 위기의식 결여와 산만한 대응에 있지만 채권단 역시 법정관리라는 확실한 카드가 있는 만큼 좀 더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 `법정관리` 성급했나?= 당초 채권단이 SK측에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촉구하면서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할 때만 해도 채권단 주변에서는 `압박용` 카드로 해석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주채권 은행인 하나은행은 SK측이 협상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만족할만한 자구안을 내놓지 않자 긴급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청산형 법정관리를 강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하나은행측에서는 주채권은행 단독으로라도 법정관리 신청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채권단 결의를 통해 오는 6월 18일까지 채무상환을 유예한 상태인 만큼 아직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법정관리라는 용어 자체가 경제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는 만큼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 결의를 하더라도 채권단 75%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며 “자칫 성급하게 일을 추진할 경우 `스타일`만 구기는 역작용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채권단 공조체제도 미흡= 채권단 내부에서는 그러나 채권금융기관간 협조체제 미흡도 이번 사태가 초래된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채권은행들이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먼 산 바라보듯 지켜보면서 단순히 따라가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채권단은 최태원 SK회장의 선처를 당부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최 회장을 엄벌해 달라는 서류에 사인을 하는 등 체계적인 전략 없이 오락가락 하는 분위기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과 SK측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파트너십이 무너진다면 국내 채권단과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되더라도 향후 해외 채권단을 설득하는데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는 달리 SK측과 채권단의 입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라고 말했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