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주영씨 타계] 소떼로 빗장열고 남북경협 길터

98년 6월16일. 세기적인 빅 이벤트가 벌어졌다.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것. 세계적인 관심을 끈 것은 물론이다.89년 민간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지 9년만에, 반세기동안 굳게 닫혀있던 판문점의 문을 열고 소떼 500마리와 함께 갈등과 대치의 현장을 통과한 그의 모습은 분단이후 남북대결의 상징이던 곳을 화해와 평화의 장소로 바꿔 버린 '마술'이었다. 이 날의 의미가 단지 그가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다는 일로만 그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이 사건은 그가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했던 금강산 관광사업과 남북경협 사업의 시동을 거는 순간이자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남북화해를 앞당기는 시발점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됐다. 그 때만 해도 그의 돌출 행동과 왜 무상으로 소를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의심들은 그로부터 약 5개월후에 풀리기 시작했다. 98년 11월18일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정주영의 승부사적인 기질과 굳은 신념의 결실을 보고 다시 한번 "이것이 바로 정주영의 구상이었구나"하며 탄성을 보냈기 때문이다. 소떼몰이 방북을 통해 그가 필생의 소망이었던 금강산 관광사업과 경협사업을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고 정주영의 사업능력과 그의 경협사업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그가 이 같은 구상을 했던 것은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9년 북한 로동당 서열 4위였던 허담의 초청으로 방북길에 올랐고, 이 때 북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상당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방문에서 정주영은 몇 가지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고 이룰 풀어가기 위한 실마리를 마련한다. 그 첫번째가 금강산 개발이었고 다음은 원산 철도차량 및 수리조선소 도크 건설 등이였다. 당시 북한은 금강산 개발사업을 자신들의 돈으로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 그는 "미국에 물건을 팔 생각으로 공장을 지을 경우 내 돈으로만 충분히 지을 수 있어도 일부러 미국 자본을 끌어들인다. 그래야만 그들이 자국 내에 광고도 하고 관심을 갖는 법이고 외국 관광객을 끌어 모을 수 있다"면서 북한측을 설득하고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사업들은 정치적인 문제등에 ?매여 10여년동안 공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찾아 오는 법.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이 정경분리의 원칙으로 바뀌자 그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소떼몰이 방북이라는 빅 이벤트를 마련, 경협사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이벤트를 통해 세계의 눈과 귀를 집중시켜 경협의 필요성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이를 계기로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북방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성사시켰다. 또 이를 통해 다져진 신뢰를 바탕으로 서해안 공단사업 등 다양한 경협사업을 구체화시켰다. 이 사업들은 분단이후 반세기동안 이루어 진 어떤 경협사업보다도 양과 질적인 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특히 금강산 관광 및 개발사업이 남긴 보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남북 민간교류시대를 연 초석을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이다. 98년 11월18일 금강호의 첫 출항이후 현재까지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북녘 땅을 밟으며 북한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750만 실향민의 한을 풀어준 것이 그 것. 다른 경협사업과 교류사업들을 확대 발전시킨 것도 큰 성과다. 정주영은 금강산 개발사업에서 다져진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서해안 공단개발사업 등 굵직한 경협사업을 합의한데 이어 문화ㆍ영농ㆍ체육교류 등을 잇달아 성사시키면서 본격적인 남북교류의 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정주영이 경협사업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생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사업이었기 때문. 그는 이에 대해 "경협사업은 자신의 필생사업이기 때문이 늦출 수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었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협사업의 추진은 그의 희망사항 때문만도 아니였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꼭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경협사업은 남북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고 이를 통해 남북의 통일을 앞당겨 부강한 미래를 남겨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의 신념처럼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 그가 추진한 남북경협사업들은 남북의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이 크게 기여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통일농구대회를 비롯한 남북체육교류 및 문화교류 등은 21세기 남북교류와 협력시대를 앞당기는 민족의 축제로 자리잡았다. 또 이 같은 교류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앞당기고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굳게 닫혀진 빗장을 여는 촉매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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