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낙동강 하구언

‘째찌국 사이소.’ 부산의 새벽은 재첩국을 팔려는 아낙네들의 외침으로 열렸다. 낙동강에서는 매일 싱싱한 재첩이 올라왔다. 강이 막히기 전의 얘기다. 1987년11월16일. 낙동강 하구언이 착공 4년8개월 만에 완공된다. 부산시를 흐르는 낙동강 하류를 가로 막는 2,400미터의 하구둑 건설에는 1,573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 서슬 퍼런 5공정권은 환경단체와 학계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해평야의 바닷물 역류 피해가 없어져 연간 2만톤의 식량증산 효과와 동남권산업지대에 대한 각종 용수공급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청사진만 강조됐다. 하구언 공사 때 강바닥에서 긁어낸 2만㎥의 흙으로 주변 개펄과 습지 100만평도 매립해 버렸다.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 황지연못을 출발해 1,300여리(525㎞)를 달려온 물길을 가둔 결과는 죽음이었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하류는 ‘한반도의 막혀 버린 하수구’로 변해 버렸다. 풍부한 영양염류와 왕성한 생육상태의 갈대 숲, 비옥한 간석지와 갑각류, 조개류의 개체수가 급감하거나 사라졌다. 재첩 뿐 아니라 숭어와 꽃게도 씨가 말랐다. 재앙은 홍수 피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구언 준공 이후 하천 주변의 피해가 커졌다. 자연과 환경을 도외시한 개발로 인한 폐해는 시화호 방조제에서도 반복됐다.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한창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새(乙)가 많이 사는 맑은(淑) 섬, 을숙도 역시 이전처럼 깨끗하고 풍요롭진 않지만 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섬진강에서 씨를 얻어 양식으로 키운 재첩도 소량이지만 나오기 시작했다. 부산 술꾼들은 여전히 재첩국을 찾는다. /권홍우ㆍ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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