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재탕ㆍ삼탕식 업무보고

"지난해 연말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는데 한달 만에 새로운 내용이 대폭 보강된다면 지난번 보고가 잘못된 게 아닙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진전된 내용으로 또 한차례 업무보고를 준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청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를 만나 이렇게 푸념을 늘어놨다. 불과 한 달 남짓 새 두 차례나 업무보고를 준비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을 알아봤더니 중기청은 오는 20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등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대통령 주재로 진행되는 국민경제대책회의는 경제부처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해 국내외 주요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런데 특별한 현안도 없는 중기청이 다른 부처를 제치고 똑같은 주제로 업무보고를 되풀이한다니 이래저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잦은 업무보고는 이례적인 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서민들 앞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시장투어'에 나서기 위해 관련부처에서 한번 써먹은 내용을 재탕ㆍ삼탕으로 우려내 업무보고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꼬집을 정도다. 중기청은 "청와대가 설을 앞두고 물가와 전통시장 활성화 등에 관심이 높아 현안 위주로 업무보고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일정에 따라 행사 자체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지만 준비는 미리 해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업무보고가 끝난 뒤 이 대통령과 중기청장, 경제부처 장관들은 여느 때처럼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일정을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 부처가 대통령에게 현안을 보고하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구제역과 물가폭등 같은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대통령의 나들이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불필요한 업무보고에 매달리는 모양새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유난히 실용을 강조해온 현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다 보니 내용보다 형식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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