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美 WTO규정 개정추진… '보호무역' 노골화

환율조정만으론 '눈덩이적자' 해결못한다 판단<br>50~100개 금융사·기업등 정부 직간접 영향권<br>현실화 어렵지만 美고강도 무역공세 대비해야

외환위기 이후 2년여 동안 정부는 부실에 빠진 금융사와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퍼부었다. 결국 100여개가 넘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기업을 포함해 무려 400여개의 대형 업체들이 정부의 직ㆍ간접 소유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고 한국은 ‘국영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2000년에는 현대사태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 간접 구제금융에 나섰다가 미국에 트집이 잡히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부실기업을 구제해주고 있다며 통상압력을 가해왔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채무재조정에 대해 미국 상무부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44%에 이르는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은 대표적 사례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분쟁조정 패널을 통해 한국측의 주장을 수용, 채무재조정이 WTO의 보조금 금지규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자 미국은 잠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 우리나라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한계에 이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우선 미국은 중국에 위앤화 절상 압력을 가함과 동시에 최근에는 반덤핑 관세 부과 등 통상압력을 부쩍 강화시키고 있다. 불꽃은 곧 우리나라에도 튀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흔히 있어왔던 채권단의 출자전환분에 대해 WTO가 보조금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아예 WTO의 규정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올 들어 노골화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유형이다. 환율과 반덤핑 관세에 이은 경제전쟁의 ‘3라운드’로 표현할 수 있다. 환율조정만 가지고는 미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미국 조야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은 출자전환 등 채무재조정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민영화한 기업의 정부지분까지 보조금으로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중국의 국영기업 가운데 부분 민영화된 곳들이 대상이 되겠지만 우리도 가시권에 들어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제일ㆍ외환은행과 한투ㆍ대투 등 금융사에 대해서는 최근 2년여 동안 활발하게 민영화 작업을 밟아왔지만 여전히 일반 기업들 사이에서는 산업은행과 우리금융 등 공적자금 투입기관을 통해 정부가 간접적으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곳들이 적지않다”고 말했다. 특히 보조금 대상으로 정부의 투입지분을 어느 정도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대상은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지만 50개에서 최대 100개 가량의 금융사 및 기업이 정부의 직ㆍ간접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WTO의 규정을 바꾸려는 미국과 캐나다 등의 움직임이 당장 현실로 나타날 것으로는 보고 있지 않다. 재정경제부 당국자도 “상당수 국가들이 보조금을 확대하려는 해석에 대해 반대하고 있어 규정을 쉽사리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을 놓고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미국 재계에서는 이미 “위앤화를 절상해봤자 미국기업들의 중국발(發)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며 차라리 ‘다른 불공정 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당장 규정 전환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공적자금 투입 금융사의 민영화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도 “정부와 기업들은 앞으로 다가올 한국에 대한 미국의 고강도 무역공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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