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1월 4일] 내 삶의 동력 '어머니'

어머니는 지난해에 팔순을 넘기셨다. 4형제 중 막내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나는 해마다 주름살이 늘어만 가는 부모님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어머니는 우리 집안의 유능한 최고경영자(CEO)셨다. 어머니는 초등학교(예전에는 국민학교)만 나오시고 역시 중학교만 겨우 나오셔서 가난한 농촌인 용인 이동면 송전에서 우편배달부를 하시던 아버지와 아무런 기반 없이 어렵게 가정을 이루셨다. 어릴 적 우리 형제들은 4형제 모두 1,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곧잘 했는데도 어머니는 특히 공부에 아주 엄하셨다. 어찌나 심하게 몰아치셨던지 우리 모두 오금이 저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를 서울로 유학 보내셨다.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것이, 서울로 유학을 보낼 만큼의 재산은 아니었는데 과감히 그리하셨다는 것과 또 내가 다닌 서울 재동 초등학교는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명문이었는데 서울 생활을 전혀 모르셨던 어머니가 어찌 알고 그리하셨나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 주말이면 서울로 먹을 것을 해 나르시던 부모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특히 나에게 많은 기대와 사랑을 주셨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앞니를 교정받았다. 심한 뻐드렁니도 아니었는데 큰 사람이 되려면 인물도 흠이 없어야 한다며 그 당시 황소 한 마리 값을 들여 일 년간 수원으로 통원하면서 치아를 교정받았다. 지금이야 치아 교정이 보편화돼 있지만 그 시절은 치아 교정이 뭔지도 잘 모르던 36년 전이었다. 어머니의 판단력과 앞서가심이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내가 대학교 진학을 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교수를 하고 국회의원을 하고 이 모든 결정과 과정에는 나 자신의 치열한 노력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꿈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한 그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즉, 어머니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기부여였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이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만들어주신 어머니가 안 계신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이번 기회를 빌어 꼭 한번 말해 보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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