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13일(현지시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개시를 공식 선언하면서 세계 양대시장의 통합을 예고했지만 협상과정이 순탄하지 않아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미국과 EU 간 관세가 이미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관세철폐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양측 간 평균 관세율은 4%에 불과하며 이미 남은 관세장벽도 모두 없애기로 한 상태다. 이 때문에 협상 때는 무역 관련 규제 등 비관세장벽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보도했다.
가장 난관이 예상되는 분야는 농업이다. EU는 그동안 건강ㆍ안전관리 법안을 내세워 미국에서 수출하는 유전자조작식품 및 성장호르몬 사용 쇠고기, 염소 소독한 가금류 등을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이들 식품은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됐는데도 유럽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전자조작식품 등에 대한 혐오감이 극도로 높은 상황이다.
화학 분야에서도 EU가 미국에 비해 안전 관련 규제의 강도가 높아 미국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이 때문에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미국과의 FTA 협상개시를 공식 선언하면서도 "상업적 이득을 위해 우리 소비자들의 건강을 양보하는 협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 의회는 EU와의 FTA 체결시 농업 분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상원의 민주당 및 공화당에서 각각 무역 담당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맥스 보커스 의원과 오린 해치 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공동 서한에서 "EU와의 FTA를 지지하지만 미국 농산물에 대한 교역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양분하고 있는 항공기 산업에서도 보조금 지급 문제를 놓고 갈등이 이어졌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의 프레드릭 에릭손 이사는 "미국과 EU 모두 협상 초기단계에는 진전을 볼 수 있는 분야를 결정하고 유전자조작식품 같은 이슈들은 보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자동차 산업이나 지적재산권의 경우 양국 간 자동차 안전기준이나 글로벌스탠더드 구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만큼 쉽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에 대해 FT는 워낙 민감한 이슈가 많기 때문에 세부협상 추진에 난항이 예상된다면서 결국 협상타결 범위가 매우 좁아져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과 EU가 2년 안에 FTA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구체적인 데드라인을 제시했지만 EU 지도부가 오는 2016년 교체되기 때문에 2015년까지 협상안이 타결되지 못하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FTA 발효를 위해서는 미국 의회는 물론 유럽의회와 EU 27개 회원국의 의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
이와 함께 이번 FTA가 추진되면 세계무역기구(WTO) 산하의 다자 간 무역협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만큼 각국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지도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다른 국가들 간 무역협정과 달리 미국ㆍEU FTA의 경우 환경단체나 노동단체의 반대는 없을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양측 모두 환경기준 및 근로자 임금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