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생콘서트] 월가의 정유사들


글로벌 신용 위기의 진앙지로 지목돼 체면을 구기기는 했지만 미국의 월가는 아직까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심심찮게 뉴스의 자료화면에 나오는 이곳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일 뿐 아니라 금융업 종사자라면 한번쯤 근무해보고 싶은 선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 '월가의 정유사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있다. 이들이 정유사를 직접 운영하며 석유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형 IB들이 원유와 석유 제품 시장의 전문 인력들을 대거 채용해 시장에 참여할 뿐 아니라 시장의 거래 가격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정유업과 금융업, 이 두 업종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파생상품 시장이다. 세계 유수의 거래소에 원유 선물과 석유 제품 선물이 상장됨에 따라 실물을 직접 취급하지 않고도 실물 거래보다 더 효율적인 매매가 가능해졌다.


또 이 같은 거래가 활성화됨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에너지 파생상품 전담 조직을 설립하고 고객 거래 중개에서 자기매매(proprietary trading)로, 장내 선물거래에서 장외 파생거래로 업무 영역을 확장해 수익 기반을 넓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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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대형 IB들은 원유와 석유 제품 실물을 취급하고 저장ㆍ수송을 위한 탱커도 보유하는 등 실물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까지 높였다.

대형 IB들이 파생상품을 수단으로 에너지 시장에 참여함에 따라 거래의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다양한 위험 회피 및 투자 수단이 제공되는 등 시장 전반에 긍정적인 시너지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들의 파생상품에 대한 영향력이 에너지 실물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함께 커진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소위 월가의 정유사들과 같이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현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장에 역행하는 행위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파생상품 거래가 현물 거래와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당연한 현상이다. 선물을 비롯한 파생상품 계약이 거래되는 것은 그 최종적인 손익이 미래 시점의 현물 가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파생상품 계약은 시간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물 계약과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생상품은 그 자체로 대단히 효율적인 시장 참여 수단이다. 다만 효율적인 수단의 활용에는 항상 효과적인 통제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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