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뉴욕·런던, 부동산시장 '검은돈 세탁과의 전쟁'

정·재계 부패인사-범죄조직 등 기업 돈으로 위장, 주택 구입 급증

英, 외인 소유 잉글랜드·웨일스 땅, 내년부터 부동산 등기소에 공개

작년 맨해튼 소재 초호화 아파트, 54%가 페이퍼컴퍼니에 넘어가

뉴욕, 소유주 신원 통보 의무화


지난7월 영국 지상파 TV인 '채널 4'는 런던의 호화 주택으로 유입되는 '검은 돈'의 실태를 파헤쳐 충격을 줬다. 기자 2명이 러시아 부패 관료와 그의 애인으로 위장한 채 300만~1,500만 파운드(55억~274억원) 정도의 고가 주택을 현금으로 사들이겠다며 5개 부동산 중개업체에 접근했다. 이들 중개인들은 불법자금 묵인은 물론 매수인의 신원을 숨겨주기 위해 법률회사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런던, 뉴욕,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 급등의 이면에 장기간의 초저금리로 갈곳 없는 자금이 몰리는 측면 외에 각국의 '더러운 돈' 유입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부작용이 커지자 양대 글로벌 금융허브인 뉴욕과 런던 당국도 부동산을 통한 돈 세탁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해외 정·재계 부패 인사나 범죄 조직이 주택 거품을 조장하고 금융 산업의 생명인 신뢰도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가장 적극적인 도시는 '전세계 검은 돈의 피난처'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런던이다. 영국은 내년부터 외국 기업이 소유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10만개 토지와 부동산 내역을 부동산 등기소에 공개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버진 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주소를 둔 기업이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보유 중인 부동산 가치는 1,220억 파운드(223조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절반이 런던에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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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최근 "수상한 돈이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런던 부동산을 사는 것을 막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런던이 돈세탁의 천국이라는 점은 올 과세연도 1·4분기에 외국기업 보유 주택으로부터 예상치의 5배인 1억4,700만 파운드의 '맨션세'(mansion tax)가 걷힌 데서도 잘 드러난다. 신분 공개를 꺼린 해외 부패 자금이 '기업 보유'로 위장해 주택을 구입한 사례가 급증했다는 얘기다. 2004년 이래 런던경찰청이 부동산을 통한 돈 세탁 여부를 조사 중인 건수도 144건, 금액으로는 1억8,000만 파운드에 이른다.

뉴욕 맨해튼 부동산 시장도 러시아, 중국, 그리스 등의 부패인사나 금융 사기범들의 목적지다. 수준 높은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다 초고가 주택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고 가격도 급등하면서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2년 로비에 힘입어 부동산 업계가 '애국법(Patriot Act)' 적용의 한시 유예 조치를 받으며 고객 신원이나 배경, 자금 출처 등을 밝히지도 않아도 된 게 탈세나 범죄 연루 자금의 유입을 부채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500만 달러 이상에 팔린 맨해튼 초호화 아파트 가운데 54%가 소유주를 알 수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넘어갔다. "미국이 돈 세탁을 방조하고 있다"는 국내외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도 올 5월 규제안을 내놓았다. 뉴욕시민이 아닌 경우 고가 주택을 구입하거나 매각한 사람의 신원과 해외 페이퍼 컴퍼니의 모든 소유주 이름까지 당국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다. 콘도나 아파트 등 8만9,000채가 적용 대상이며 시장 가치로는 800억 달러에 달한다. 미 재무부도 "소유주 정보가 투명화될수록 고가 주택을 돈세탁 통로로 활용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의 범죄 악용 여부를 우선 순위로 감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맨해튼 부동산 업계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다른 도시로 눈을 돌리면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가 감소하지 않을까 울상이다. 하지만 미 시민단체는 이번 규제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유주 신원을 당국에 보고할 뿐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데다 페이퍼컴퍼니가 실제 소유주를 빠뜨리고 대리인을 내세울 경우 조사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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