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후 5년간 "돈벌 생각 말자" 가치투자 기초다지는 데 온 힘
'아는 것만 한다' 운용철학 세워
중국·일본 등 가치주에도 눈독… 롱쇼트·원자재는 몰라서 안 해
잘할수 있는 것만 계속 담을 것
42.195㎞를 끊임없이 뛰어야 하는 마라톤 경기를 완주하려면 꾸준한 페이스가 필요하다. 앞 선수를 앞지르기 위해 페이스를 무시하고 힘을 내다가는 자칫 앞지르기는커녕 중도에 경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 누가 더 오래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속도로 결승선을 통과하느냐가 마라톤의 순위를 결정한다. 펀드는 마라톤을 닮았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펀드의 수익률이 더 좋다거나 돈이 몰린다는 말을 듣고 '요즘 잘나간다는 펀드'로 갈아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42.195㎞를 가야 하는 마라톤 선수에게 100m 선수처럼 뛰지 않는다고 외면하는 광경을 요즘 자본시장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단기성과를 중시하는 자본시장에서 마라토너처럼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온 사람이 있다. 참을성이 부족한 자본시장에 기다림이라는 가치를 일깨워준 이상진(59·사진) 신영자산운용 대표다.
가치투자가 무엇인지 시장에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는 이 대표의 운용철학은 단순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아는 것만 한다'가 최고의 투자철학이라고 믿고 있다.
누적 수익률 400%에 빛나는 '신영밸류고배당펀드'와 10년 이상 가치주펀드로 사랑받아온 '신영마라톤펀드'의 성공신화는 이 대표의 운용철학인 '아는 것만 한다'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이 대표는 "롱쇼트·원자재펀드 등이 최근 유행하고 많은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우린 모르니까 하지 않는다"면서 "우린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가치투자만 해왔고 앞으로도 이것만 할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 대표의 확고한 운용철학은 소신 있는 투자로 이어졌다. 지난 2000년 초 국민연금은 운용사들로부터 코스닥전문펀드를 모집했다. 운용사 대부분이 참여했지만 신영자산운용은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이 대표는 "기술주를 잘 알지 못하고 현재 상황에서 코스닥 시장에 참여하는 건 투자자 수익률에 반하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에게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이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일로 시장에서 신영자산운용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고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신뢰하는 운용사로 인정받고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가치투자의 기본은 유능한 기업가가 운영하는 기업을 발굴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업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투자하며 기다린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5~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기업의 성장을 위해 우리도 그만큼 기다려줘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장기투자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좋은 기업을 고르는 눈은 그의 경력에서 비롯됐다. 그는 금융업이 아니라 일반 제조업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78년 현대종합상사에 공채로 입사했다. 해군장교로 4년간 복무한 후 선박영업부로 배치됐다. 해군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선박 세일즈를 맡은 것이다. 이후 선박영업부가 현대중공업 소속으로 바뀌면서 울산으로 내려갔다. 당시 신혼이었던 이 대표는 졸지에 주말부부가 됐다. 토요일 오후4~5시까지 근무한 뒤 고속버스를 타면 서울에는 밤11시에 도착했고 다음날 오후 다시 내려가야 하는 힘든 나날이었다. 이러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 대표는 미국 비즈니스 잡지를 통해 금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선박영업도 파이낸싱이 대부분이라 더욱 흥미가 갔다. 특히 해외 금융기관들이 제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자본시장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는 와중에 우연히 신문에 나온 신영증권 채용공고를 보고 인생 최고의 도전을 결심했다. 신영증권이 알차고 탄탄한 증권사라는 판단이 선 이 대표는 이력서를 냈고 1987년 4월 인수공모부에 입사했다. 이 대표는 "선박영업을 하다 처음으로 해보는 기업공개(IPO) 일이라 어렵고 생소했다"면서 "회계부터 배우며 회사 안의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며 보름 이상 집에 가지 않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계양전기·혜인 등 수많은 국내 알짜 중소기업의 IPO를 도맡으며 기본기를 배웠다.
그는 신영증권에 이어 슈로더증권과 베어링증권 등을 거쳤다. 특히 슈로더에 있을 때 1년에 200~300개의 기업을 직접 탐방하며 기업에 대한 시각을 넓혔다. 이후 1996년 신영자산운용 창업 멤버로 활동한 그는 2010년 신영자산운용 대표로 취임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을 해봤기 때문에 제조업 시스템을 잘 알 수 있었다"면서 "대기업은 물론 IPO와 기업탐방을 통해 중소기업들까지 경험하면서 가치주에 대한 기본기를 쌓았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이 대표는 신영자산운용 창업 당시 원종석 신영증권 대표와 미국 운용회사 30여곳을 직접 둘러봤다. 당시 미국에서 많은 운용사가 가치투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고 소형 운용사인 신영자산운용도 가치투자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대표는 "가치주 하우스를 만들자는 방침이 선 뒤 5년간 돈 벌 생각을 말자는 각오로 기초를 다지는 데 전력투구했다"면서 "당장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가치주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최근 자본시장은 단기성과를 너무 강요해 이런 환경에서는 제갈공명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장기 3~5년을 기다려줘야 운용역도 안심하고 운용할 수 있어 장기간 기대 이상의 높은 수익률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18년간 국내 가치주 발굴에 힘써온 이 대표는 이제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주변의 중국·일본 등에서 가치주를 찾고 있다. 오랜 기간 국내 가치주와 배당주를 보던 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가치주를 찾는 것이다. 이 대표의 '아는 것만 한다'는 운용철학 역시 그대로 반영됐다. 지리상 거리가 먼 다른 국가보다 중국과 일본은 자주 갈 수 있는 곳,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 가치투자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임원진부터 매니저까지 중국어·일어 등을 배우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 금융업계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대표는 "금융업종이 전반적으로 단기수익률을 강조하다 보니 자신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단기수익만 좇아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국내 펀드시장의 상품 종류는 이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해외 금융선진국만큼 전문가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펀드 종류가 많다 보니 관리해줄 인원도 부족하고 결국 수익률 저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하며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이 대표는 "2,000조원을 넘는 개인금융자산이 갈 곳은 결국 펀드시장"이라면서 "계속 커질 펀드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정직하고 알뜰하게 운용하는 것"이라고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18년 전 회사를 만들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회사의 철학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서 "신영은 가치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가치주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상진 대표는 |
저성장 한국, 통일은 도약 기회…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 준비해야죠
|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