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한이 끝나는 각종 세금의 비과세ㆍ감면 규모가 2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민ㆍ중소기업과 공익 지원 차원의 국세감면 부분을 빼고 나면 정부가 부담 없이 축소ㆍ폐지할 수 있는 규모는 3,000억여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핵심 세수확보 재원으로 비과세ㆍ감면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현실에 맞게 공약 시행의 속도를 조절하고 조절 수준도 훨씬 높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6일 서울경제신문이 국세감면 항목을 전수조사한 결과 총 44건의 비과세ㆍ감면 조항이 올해 말 일몰(경과규정은 제외)을 맞는다. 일몰되는 감면액 규모(〃)는 2조9,661억원에 달한다.
일몰 조항 건수는 본지가 관련 세법을 전수조사해 조세특례제한법상 감면(조세지출)과 일반세법상 감면(비망) 조항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집계했다. 이렇게 집계된 일몰 조항의 감면액은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조세지출예산서를 기준으로 합산했다. 조세지출예산서가 미처 반영하지 못했거나 '추정 불가'라고 진단한 조항의 감면액은 영(0)으로 처리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내부 추정자료와 비교해 감면 규모가 높게 계산된 측면은 있지만 대략 2조원대의 40여개 감면 조항이 일몰된다는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일몰 조항 중 서민ㆍ중소기업ㆍ공익 지원용 감면 조항은 총 22건이며 감면액 기준으로는 약 88%(2조6,093억원)에 달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서민ㆍ중소기업 지원용(13건) 1조3,824억원 ▲공익 지원용(9건) 1조2,269억원 ▲기타(22건) 3,568억원이다. 서민ㆍ중소기업 지원용 항목은 해당 법에 서민ㆍ중소기업 특례가 명시돼 있거나 해당 계층이 실질적으로 수혜를 받는 경우로 한정해 분류했다.
박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조세감면 조항이 일몰을 맞으면 원칙적으로 폐지하되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조항은 살려둘 방침이다. 따라서 올해 일몰이 도래한 44개 조항 가운데 서민ㆍ중소기업용 13건은 대부분 시한이 연장돼 내년 이후 1~3년간 존속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31개 조항 중 공익 지원용 10건 역시 폐지가 쉽지 않다.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소외계층, 중소기업, 비인기종목 운동선수 등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몰이 도래한 공익용 감면액 중 75.2%(8,993억원)는 신재생에너지와 폐자원재활용ㆍ환경보전 용도인데 관련 업계 종사자의 상당수가 벤처ㆍ중소기업이거나 영세자영업자ㆍ서민(고물상 등)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해 7월 폐자원재활용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공제제도를 일몰이 아닌 항구적인 제도로 전환하고 공제율을 높여달라고 정부에 공개요청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청 역시 '폐기물자원 에너지화산업 로드맵 2012' 자료를 통해 폐자원재활용 등 '폐기물에너지화' 분야에 대해 "많은 분야에서 영세 규모의 중소기업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공익용 감면액 중 비중이 큰 또 다른 항목은 ▲현금영수증 사업자ㆍ가맹점에 대해 부가가치세 공제 등의 혜택을 주는 과세특례(감면 전망액 1,082억원) ▲전자세금계산서 발급ㆍ전송 세액공제(〃 350억원)다. 이는 자영업자들이 성실하게 소득을 신고하도록 유인하는 장치다. 탈세방지를 대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차기 박근혜 정부로서는 폐지할 명분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따라서 44개 조항 중 중소기업ㆍ서민ㆍ공익용을 제외하면 남는 조항은 기타 감면 22건이다. 이들 조항은 비교적 축소ㆍ폐지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만 모두 일몰시킨다고 해도 세금수입은 불과 3,568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재정부는 박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국세감면 정비, 탈세방지 등을 통해 연평균 세수를 3조원씩 순증(누적 기준으로 5년간 50조원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3,000억여원의 세수증대로는 태부족이다.
학계에서는 박 당선인이 보다 현실적인 세수확보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세수의 충분한 확보가 불투명하다면 공약 이행 속도를 조절하라는 것이다.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율을 높이는 증세 없이 박 당선인의 공약을 100% 달성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라며 "세수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면 중요도에 따라 공약 이행 시기를 늦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