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부정선거와 관련, 좋지 않은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도 나오고 있다.
하나는 아로요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지만 국민들이 무분별하게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혼란을 부추기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일각에서 쿠데타에 대한 루머가 있지만 최고 군부는 민주적 절차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가톨릭 교회의 리더 역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필리핀 정치사에서 가장 덕망 있는 인물로 평가되는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 역시 어제 국제 컨퍼런스를 위해 필리핀을 떠나면서 “내가 돌아올 때 나는 지금과 같은 정부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 개인이나 단체가 아로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라모스는 사실 내년까지 새로운 정부가 구성돼야 한다고 요구했던 사람이다. 아로요는 현재 자신의 동맹군을 어디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제 장관을 포함해 10명의 장관들이 지난주 목요일 사임한 후 그녀의 내각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지난 2001년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 문제 이후 권력의 핵심에 오르게 된 아로요는 현재 자신이 부정부패와 관련해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달 공개된 테이프에는 선거 결과가 발표되기 전 아로요가 선관위원에게 수백만표 차로 이기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선거부정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에 긍정적인 소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 냉정한 사고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물러났음에도 필리핀의 정치 문제가 여전한 것처럼 아로요의 사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모스 전 대통령과 교회, 그리고 군부와 다른 기관들이 전체 시스템을 개혁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예에서 보듯 혼란의 틈을 타 득세하는 인기는 위험하다. 풍부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극적 상황을 맞고 있는 필리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문제점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