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북한산의 봄

일자: 2003, 3월 1일(토) 인원: 4명 등산로: 국민대 (9:30) - 형제봉 (10:30) - 대성문 (11:35) - (대남문, 문수봉) &#8211; 청수동 암문 - 삼각봉 (12:20) - 나한봉 (12:40) - 나월봉 &#8211; 부왕동 암문 - 증취봉 (13:25) &#8211; 용혈봉 &#8211; 용취봉 &#8211; 가사당 암문 - 의상봉 (14:45) &#8211; 옹달샘 (15:20-40) - 산성매표소 (16:00) - 오늘 (월요일) 아침 갑작스런 꽃샘추위가 출근 길을 얼게 만든다. 회사 가까이오니 북악능선 너머로 보현봉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간밤에 내린 모양이다. 내일은 서울이 영하 7도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다 - 새들의 봄노래 9:30. 국민대입구에서 출발. 소나무 숲을 좀 지나다 보니 이내 참나무 등 무드러운 낙엽수 숲으로 바뀐다. 산 옆구리를 타고 가는게 여유롭고 포근하다. 경칩 (3월 6일)이 왜 이렇게 늦냐며 금방이라도 개구리가 낙엽아래서 튀어 나올 것 같다. 새들이 봄을 먼저 노래한다. 까치, 박새, 종다리,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새들이 가세한다. 흔치않은 까마귀까지 베이스로 끼어 든다. 모처럼 들어보는 새들의 봄을 맞는 합창이다. 나무들도 기지개를 켤 태세다. 양지에 있는 개나리는 노란색을 내보일 듯 말 듯 하고, 진달래와 철쭉은 겨울눈이 도톰해져 며칠만 있으면 두꺼운 솜털을 조금씩 벗을 것 같다. 그런데 작년 여름 태풍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아름들이 참나무와 리기다 소나무가 힘없이 통째로 뽑혀 나자빠져 있는가 하면, 가지가 찢겨 나가 있는 나무들도 가는 길목에서 눈에 많이 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가다보니 조용하고 좋다. 형제봉에서 10:34. 비껴갈 듯 하던 최국장이 내마음을 알아챈 듯 올라가 보잔다. 뒤를 따라 길 없는 바위로 형제의 형봉에 올랐다. 보현봉에서부터 구기동으로 사자능선이 기운차게 기어내리는 모습이 나타난다. 보현봉은 구름에 숨어버렸고, 봄이 오는 줄 모르고 있다 때를 놓친 잔설이 근육질의 몸에 하얗게 몇 군데 보인다. 여기까지만 해도 눈은 거의 다 물러간 줄 알았다. 정 남쪽 코앞에 동생봉이 거의 같은 키로 서 있다. 쇠밧줄이 바위길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멀리 안개속에 희미하게 북악의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형제봉의 다른 모습 11:00. 평창동, 정능, 국민대에서 오르는 길이 마주치는 보현봉 아래 삼거리. 평창동에서 오르는 철계단의 끝 철기둥에 ``평창 다래교”라고 쓰여있을 뿐 위치를 말해주는 이름은 없다. 여기서 최국장은 형제봉의 모습이 잘 비교되는 곳으로 잠깐 안내한다. (11:10) 둘이 나란히 있는 전혀 다른 옆 모습이 잡히는데 ``형제봉``보다 ``남매봉”이 훨씬 더 어울릴 것 같다. 백두대간을 달려와 배운대을 지나 보현봉에서 쉬고 북악아래를 향해 남동생을 앞세우고 가는 누이의 모습이다. 남동생은 바위로 이루어져 마른 모습에 까탈스럽고 누이는 아래가 펑퍼짐하고 나무로 둘러싸여 후덕해 보인다. 동생을 잘 보살피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누님상이다. 여기까지는 사람을 피한다고 이상한 루트를 타고 와 복기(復棋)가 정확히 되지 않는다. 아직 등산은 바둑으로 치면 아마 9급정도이니 당연한 일일께다. 등산금지구역인 보현봉 삼각지대 보현봉을 꼭지점으로 국민대와 평창동의 삼각형지역은 일찍부터 등산 금지 구역으로 되어 있다. 보현봉이 너무 많은 등산객과 기도처로 삼는 또 다른 많은 신앙인들로 몸살이 나는 바람에 취해진 조치란다. 북악산 넘어 서울 4대문안을 제일 가까이서 조망 할 수 있고 장타를 날리면 청와대 앞마당에 골프공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봉우리다. 삼거리라 여기서 일시에 등산객들이 비에 계곡 물 불어나듯 몰려든다. 모두가 보현봉 북쪽 허리를 돌아 대성문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산 경사면과 길에 눈이 꽤 많다. 그냥 겨울이 봄에 양보하기에는 좀 서운하단다. 눈은 훈훈한 봄바람에 녹아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 아니젠을 꺼내기는 조금 그렇다. 조심조심 다른 등산객 뒤꽁무니를 따라 눈길을 가다 막판 오르막길은 철계단을 밟고 대성문에 이른다. 11:37 의상능선을 문수봉 아래 삼각점(715m)에서부터 대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서니 대남문 가는 서쪽 산자락과 등산로에는 눈이 더 쌓여있다. 이곳은 단풍나무 군락지역. 가을에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도 이 곳을 지나노라면 붉은 당단풍에 저절로 가슴에 불이 붙는다. 이 곳 단풍나무들이 지난 가을의 잔해를 조금씩 달고 있다. 그러나 전혀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이 눈속에 앙상한 회색 몸통을 드러내 놓고 있다. 역시 등산객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한 등산객은 옆 솜이불 같은 눈밭에 누워버린다. 사람을 피해다니는 것도 등산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중요 요소. 너나없이 한 주 도심의 시끄러움을 피해 오다보니 주말이면 체증이 심하다. 오늘은 3.1절 휴일로 다른 토요일보다 더 붐빈다. 최국장은 발자국이 얼마 나지 않은 오른쪽 눈밭으로 방향을 튼다. 도떼기 시장 같은 대남문은 건너뛰자는 생각이란다. 눈밭을 지나 길을 건너 청수동 암문위로 잔설을 밟고 올라 의상능선 성벽에 달라붙는다. 동쪽 맞은편으로 펼쳐지는 비봉능선의 마지막 문수봉 자락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삼각점 (715m)의 전망 좋은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12:20분). 바로 아래 화강암에는 점자처럼 만져봐야만 글씨를 알 수 있는 조그만 비석이 있다. 글자의 검정색이 다 날아갔는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어 포기했다. 최국장은 이 근처에서 조난사한 등산객들에게 앞의 문수봉을 바라보며 즐기라고 세운 가로 세로 50-30cm 정도의 사각 추모석이란다. 가래떡, 바나나, 비스켓으로 배를 채우며 문수봉 자락의 절경을 마음에 각인시키느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한다. 디카의 바데리가 나가 휴대하지 못한 게 만추(萬秋)의 한이다. 문수봉에서 깍아 내린 절벽 바위, 그 옆으로는 쌓인 눈사이로 펼쳐진 앙상한 나무들. 바위, 나무, 눈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절경이다. 시내쪽에서 보아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동양화다. 조망 포인트를 잡아 안내하는 최국장이 정말 북한산 사나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말로 해 봐야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분을 알랴. ``가보시라”는 말을 하면 기행기를 쓰는 사람으로 너무 무책임하다”고 혼날까. 두 이국장과 나는 그저 부르짖음 마크(exclamation mark:!)만 연발했을 뿐이다. 눈을 비봉 능선 따라 남서쪽으로 돌리다보면 사모바위가 뚜렷이 잡힌다. 여승이 승무를 추기전 하얀 고깔을 파르라니 깍은 머리에 쓰고 북쪽으로 다소곳이 머리 숙여 합장하는 모습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까... 1968년 1월 21일 김신조일당이 마지막 청와대를 공략하기 전날 이 바위아래서 휘황찬란한 서울의 야경에 놀라며 숨고르기를 여러 번 했던 곳이란다. 그 능선을 조금 더 따라 내려가다 보면, 진흥왕 순수비가 있었던 비봉의 큰 바위도 아스라이 잡힌다. 재작년 네 손발을 바들바들 떨며 처음 올랐던 곳이다. 서쪽 앞켠에는 응봉능선이 힘차게 달린다. 옆에는 북쪽으로 남장대 자리가 있는 곳과 행궁지가 있다는 이정표가 있다. 숙종의 북한산성 역사의 흔적들이다. 이봉주의 엉성한 수염 같은 나한봉 정상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의상능선을 따라간다. 물론 무너진 성벽위를 밟고 가다 바위가 나오면 쇠밧줄을 잡기도 한다. 다음이 나한봉. 여래가 되기 바로 전 경지에 오른 성자라는 아라한의 준말이란다. 사찰에 가면 나한전이나 영산전이라는 이름으로 있는 불전도 여기서 나온말. 물론 석가모니를 주축으로 100나한 또는 500나한이 안치된 전각이다. 최국장은 499나한에 자기가 500번째 나한이 될 거라며 나한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한봉 (688m, 12:40)에 이르니 앉아 쉬기 좋을만큼 펑퍼짐한 공간이 있다. 컵라면에 점심을 찌느라 한 젊은팀이 터를 넓게 잡았다. 북서쪽을 휭하고 둘러봤다. 정상에 신갈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이 이 봉우리를 떠나 뒤돌아 볼 때 마치 의지의 마라도너 봉다리 (이봉주)의 엉성한 턱수염을 하늘로 치켜올린 모습이다. 삼각산의 모습 지금도 흔치않게 부르는 북한산의 다른 이름인 삼각산 (三角山)의 의미를 여기서 뚜렷이 알 수 있다. 남쪽이나 동쪽에서보이는 허연 병풍 같은 화강암 백운대(836.5m)는 왼쪽에 하나의 뽀쪽한 봉우리로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한참 낮은 만경대(799.5m) 가 낮은데도 앞으로 나와 있어 백운대와 거의 같은 키로 보인다. 가운데 공간에 인수봉( 810.5m) 이 솟아 있다. 누가 뭐래도 명약관화한 삼각산이다. 삼각산이름을 절묘하게 실증적으로 말해주는 북한산 최고봉의 스카이라인이다. 三角山 삼각산 三角高峰 貫大淸 삼각산 높은 봉우리 登臨可摘 斗牛星 올라가면 북두와 견우성도 따겠네 非徒嶽 (山由) 興雲雨 저 산이 어찌 구름과 비만 일으키랴 能使邦家 萬世寧 이 나라를 만세토록 편안하게 해 줄 테지 비록 여기에서 조망하고 지은 시조는 아닌 것 같다. 산 이름을 세조때는 그렇게 많이 불렀던 것 같다. 단종의 폐위소식에 제일 울분을 터뜨리고 끝내 생육신으로 방방곡곡을 중으로 떠돌았던 김시습의 시조다. 오로지 우국 충정해서 나온 것 같다. 3.1절을 생각하며 읽으면 조금 어울릴까? 그가 고시(과거) 공부를 하러 이 북한산 복판 중흥사에 들어 와 있을때, 그도 심신을 다지기 위해 의상능선을 걸어 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다시 나월봉(657m)쪽으로 향했다. 그 삼각산은 계속된다. 물론 북쪽 비탈을 내려가니 물먹은 눈이 하산을 쉽지 않게 한다. 다행히 쇠줄이 있어 미끌어지거나 떨어질 염려는 없으나 부주위하면 엉덩이 아니면 허리가 나가기 싶상이다. 문수봉을 시작으로 하면 4번째 봉우리다. 최국장은 아예 나월봉은 오를 생각을 안한다. 편안한 산허리를 잡아 돌아 부왕동 암문위를 지나 증취봉으로 올라섰다. 이 의상능선은 오르는 봉우리 하나하나가 산의 형태를 다 갖추었다. 이는 도봉산의 오봉과 비교되는 점이다. 봉우리도 갖가지 모양의 바위로 이루어져 다른 봉에서 보면 저마다 절경을 이룬다. 주인공이 된 노적봉 증취봉 (593m, 13:35-58)에는 두 팀 20여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 끝마무리 중이다. 올라와 보니 그 우람한 산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그저 평범하고 넓직한 바위덩어리다. 동쪽 조망이 그만이다. 인수봉은 숨어 버렸고 노적봉이 주인공으로 전면에 떡 버티고 서 있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들었던 목포 유달산의 노적봉을 여기서 쉽게 느껴볼 수 있다. 거대한 바위하나가 노적가리 처럼 높게 볏단을 쌓아올린 모습이다. 조금 전 삼각산에 조명을 해주던 햇살이 구름사이로 이번에는 노적봉에 조명을 해 주위 백설로 화강암의 흰색이 죽는 걸을 보충해 준다. 조물주도 자기 작품 솜씨를 조명으로 한껏 뽐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특히나 현대 무대 예술은 조명없이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있지 않은가. 주능선을 따라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다보면 동장대가 또렷이 보인다. 동서남북 장대 중 총지휘본부인 동장대. 북한산성을 제일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넷 중 유일하게 복원된 지휘본부가 주능선상에 있는 동장대다.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만큼 크고 넓지는 않지만 산성에서 조망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사과하나 깍아 신맛을 보았다. 용혈봉(581m), 용출봉(571m)도 비슷하게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내리막길은 여지없이 쇠줄을 잡고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레 내려와야한다. 용출봉을 오르는 길은 쇠사닥다리까지 해놓았다. 동쪽 바로 산 아래 절 마당에 큰 좌불의 펑퍼짐한 뒷 모습이 보인다. 강남 능인 선원에서 불사중인 국녕사 경내다. 로데오 거리가 가까워 칼라에 대한 보다 현대적인 패션감각이 생겼다는 얘기인 모양이다. 밤색에 입술은 빨간 루즈를 바르고 앞 가슴은 살색으로, 머리는 검은 나발(螺髮)로 석굴암의 그것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합장한 석가모니란다. 국민대에서 올라오다 영불사 경내에 보관을 쓴 큰 미륵보살 입상을 보고 올라왔다. 북한산에 불국정토를 이루겠다는 생각인지 절 천지다. 절을 지어야만이 자비의 나라 불국 정토가 만들어 지는 모양이다. 의상능선의 마지막 봉우리인 의상봉(503m, 14;46-55) 이다. 서쪽으로 바위벽을 하고 있다. 봉에 오르니 헬리포트가 있고 서풍이 세게 바위를 타고 올라온다. 그래도 오는 봄 기운에 추위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구름이 오락가락한다. 대서문을 사이에 두고 동쪽 건너에 비슷한 키의 원효봉이 육중한 바위를 자랑한다. 능선을 따라가면 영취봉을 지나 백운대에 이르는 고난도의 능선이 보이고 계곡으로는 백운대 아래 우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위문이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게 보인다. 대서문에서 남동쪽으로 올라가면 성안의 정문 중성문을 지나 보국문에 오르게 된다. 우리는 당초 가기로 했던 원효봉 등정은 포기 산성매표소로 내려오기로 했다. 옹달샘에서 마지막 시원 한 물한바지 마시고 용암사 서쪽 길로 내려오니 대서문쪽의 아스팔트 길과 합류해 매표소로 연결된다. 간밤의 실비가 봄을 재촉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비가 내려 아직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초목을 일어나라고 간지럽힌 흔적이 있다. 이번 주는 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고, 오늘은 일제에 항거한 84회 3.1절이다. 많은 근로자들은 춘삼월 시작의 연휴를 어떻게 즐길 가 미리부터 계획을 많이 짰을 것이다. 찌푸둥한 날씨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많은 사람들이 다소 멈칫멈칫 했을 것이다. 9:00삼선교에서 지하철을 내려 2번 버스를 타자마자 뒷 좌석에서 나를 부른다. 이용택국장과 이윤호국장. 우연도 대단한 우연이다. 로또 복권과의 확률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나을까. 등산에 길조라며 서로 좋아했다. 국민대 교문앞에서 내리니 9:15. 여기는 처음 와본다. 3/3일에 있을 2003학년도 입학식 플래카드가 교문에 붙어있다. 최국장은 전화해보니 5분내로 도착할 거란다. 이내 형수님의 차에서 내려 조인한다. 최국장은 ``회사 사람과의 야외 모임 약속에서 나보다 먼저 오는 사람 드믄데”라며 신기해 한다.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오후에는 해가 날 거라는 예보였다. 에필로그 산새들이 부르는 봄의 합창을 들으며 산행을 시작, 형제봉까지는 봄이 다 온 듯한 생각에 겨울 등산복이 무겁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좀 겸연쩍었다. 그런데 보현봉 옆구리를 돌면서부터는 갑자기 눈이 쌓인 겨울이어서 생각이 바뀐다. 특히 의상능선에서는 봉우리를 내려갈 때마다 경사가 급하고 질펀한 눈이 많아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체력 소모도 역시 많았고 무릅에도 좀 무리가 많았던 것 같다. 그나마도 천만 다행이었던 것은 쇠밧줄이 곳곳에 많이 박혀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산의 봄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북쪽 경사면을 따라 다니다 보니 북한산의 겨울을 더 많이 경험한 산행이었다. 물론 기온으로 보면 하루 내내 봄이었다. 그렇지만 의상능선이 북한산의 거의 가운데를 지나는 능선이라서 북한산의 전체를 제일 중심에서 잘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고 주능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방의 수려함을 처음 느껴보았던 점이다. 최국장이 하곤했던 ``북한산이 설악산 못지 않다”는 얘기를 이날에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의상능선을 서쪽의 산성 매표소에서 치고 올라 온게 아니고 형제봉에서 올라와 문수봉쪽에서 역으로 내려가면서 묘하게 정력적인 남성의 왕성한 성적 활동력을 본 느낌이다. 우선 형제봉에서 서쪽을 바라볼 때 보현봉으로 오르는 사자능선은 마치 살모사가 머리를 쳐들고 무섭게 올라온다고나 할까, 밀물때 물기둥을 세우고 들어오는 모습이라고 할까. 이는 또한 남성의 성기가 힘있게 erection되는 느낌으로 와 닿았다. 이 상태에서 문수봉이 바톤을 이어받아 의상능선으로 떨어지는데 봉우리가 도,시,라, 솔…. 한 오타브를 한음씩 떨어지면서 길게 ejeculation하는 모습이다. 봉우리 하나하나가 힘이 가해 질 때 튀어오른 듯한 느낌이다. 지나친 해석일까? 도(문수봉), 시(715m 삼각점), 라(나한봉,688m), 솔(나월봉,657m), 파(증취봉,593) 미(용혈봉,581m), 레(용출봉, 571m), 도(의상봉, 503) 계절에서 오는 봄과 함께 사자능선과 의상능선 자체에서 뭔가 젊음이 솟구치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다음은 산성 매표소에서 오를 계획인데 그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올까 자못 궁금하다. 언제 실현될지는 누군가가 ``놀아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 혼자는 쉽사리 와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내가 보았던 절경들을 북한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보여 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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