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일왕(日王)과 천황(天皇)

09/16(수) 18:40 崔 禹 錫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이제까지 일왕(日王)이라 부르던 것을 천황(天皇)이라 공식 호칭키로 했다고 한다. 일왕이라 하든 천왕이라 하든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한일간의 미묘한 감정때문에 계속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쓰는 공식 명칭은 몰론 천황(텐노)이다. 구미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천황엔 황제의 의미가 있어 조선조시대의 왕들보다 높게 보이므로 한국에선 그냥 일왕으로 써왔다. 애국심이 유달리 강한 분들이 많아 천왕으로 부르는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후엔 황제고 왕이고 대부분 실권없는 상징적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작은 나라일수록 황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은 왕으로 쓰는 대신 에디오피아는 셀라시에가 실각하기까지 황제를 고집했다. 사실 일본 천황의 존재는 매우 독특하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하여 근 천년을 이어오고 있는데 권위는 대단한 대신 권력은 별로 없다. 권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올 수있었는지 모른다. 헌법상 국가원수지만 입헌군주제의 상징적 존재다. 2차대전 전에도 천황이 절대권력을 가진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별 힘이 없었다. 보통땐 그냥 장식품같이 앉아 있다가도 비상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집안의 지혜로운 노인과 같다. 1936년 군부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앞장서서 저지했다든지, 2차대전 말 육군이 결사 항전을 외칠때 항복과 종전을 결정한 것이 천황이었다. 일본에선 대부분 천황을 존경한다. 세속적 권력에 초월한 제사장(祭司長)같은 존재로서 숭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2차대전 후 연합군도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고 그 권위를 혼란 수습에 이용했다. 천황의 신통력은 아직도 대단하다. 95년 고베지진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임시숙소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천황부부가 위문을 가자 모두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TV화면에 비친 모습을 보니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든 분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황송해 했다. 쇼와(昭和)천황이 서거했을때 뉴스를 전하는 방송국 앵커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나왔고 술집은 물론 상가들이 많이 철시했다. 지금도 연초엔 천황을 멀리서라도 배알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궁성앞에 모인다.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그렇다. 천황은 일본 사회 안정을 위해 귀중한 존재로서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내용의 「천황의 경제학」이란 논문도 나와 있다. 천황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무척 언동에 조심한다. 언젠가 기자회견장에서 어느 TV프로를 잘 보느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프로는 있지만 잘못 이야기하면 그 방송국의 선전이 되기 때문에 밝히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외국원수나 외교사절을 만나도 외무성에서 써준대로만 이야기한다. 일본사람들은 천황에 누(累)가 가지않도록 극력 커버해 항상 깨끗한 국가상징으로 있어주길 원한다. 그래서 국가간 외교관계의 매듭은 천황의 방문으로 짓는 것이 관례다. 이런 천황이니 구태여 호칭문제로 일본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남/자/의/향/기'(19일) 무/료/관/람 일간스포츠 텔콤 ☎700-9001(77번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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