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가 사교육 억제 대책 가운데 하나로 예고한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 방안이 되레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사교육의 풍선 효과다.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변별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결국 수학·과학 등 다른 과목의 사교육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 교육단체 조사 결과 수학 과목에 대한 선행학습은 일부 학원에서 약 7년까지 늘어나며 영어 과목의 사교육을 앞질렀다. 한 교육계 인사는 "제도는 이상적이지만 취업을 위해 심화·전문영어 학습이 필요한 사회 현실은 도외시한 방안"이라며 "충분한 영어 사교육이 가능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대학 선택과 직업 선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입시에서 외국어특기자 전형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늘교육에 따르면 정부의 입시간소화 방안에 따라 2015학년도 서울·수도권 대학의 수시모집 전형에서 외국어특기자 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서울 주요 대학의 외국어특기자 전형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연세대는 국제 전형 선발인원을 313명에서 394명으로 81명 더 늘렸다. 고려대는 어학특기자 전형에서 지난해보다 20명 줄어든 280명을 모집하고 서강대와 이화여대도 축소폭이 각각 31명, 50명에 그쳤다.
이에 따라 일반고와 특목고·자율형사립고 간에 영어 학력 격차가 더 커지면서 어학특기자 전형은 특목고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외국어고·국제고 등은 영어 전문교과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번 제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입시 전문가는 "주요 대학의 경우 전형 이름을 바꾸거나 다른 전형 내에 포함시키는 방법 등으로 여전히 어학특기자 전형을 유지해 갈 것"이라며 "절대평가가 도입될 경우 '특목고 전형'이라 불려온 외국어특기자 전형은 갈수록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 내신성적의 절대평가화까지 더해질 경우 일반고의 영어 교육 환경은 더욱 황폐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미 고교 입시에 필요한 중학교 내신성적 일부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반영하기 시작했으며 대학 입시에서의 순차 도입을 예고해왔다. 수도권 고교 교사인 A씨는 "성적 평가방식이 절대평가로 바뀔 경우 가뜩이나 열악한 일반고들은 학생들에게 좋은 등급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영어 시험을 더 쉽게 낼 수밖에 없다"며 "고교별로 상이한 교육과정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학력 격차를 허용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능에서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돼 쉬운 문제가 출제될 경우 고교 과정에서 영어 학력 저하는 불가피해진다. 이럴 경우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별도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도 따른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은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토플과 토익 등 공인기관의 영어 성적이나 일정 이상의 영어회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상당수 대학 역시 사회 기조를 감안해 졸업 사정에 영어 공인 성적을 반영하거나 영어 강의, 영어 원서 수업 등을 편성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교육 영어만 하향 추세화된다면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해 영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로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라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며 "공인 어학능력 획득과 관련된 취업영어 시장과 고교 입학 이전에 고교 수준의 영어학습을 마무리하려는 입시영어 사교육 시장이 되레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