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철강가격과 시장원리/박경서 포스코경영연 책임연구원(기고)

철강업계와 수요업계간 철강가격 인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철강업계는 지난 상반기 열연강판 내수가격을 6.4% 인상한데 이어 최근 냉연제품가격을 계약기준으로 5.4∼9.0%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는 올해 상반기 경기침체와 기아사태의 영향으로 인한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것을 우려하며 가격인상 철회 건의문을 작성, 통상산업부 등 관계당국에 제출했다.가전업계도 제품원가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냉연강판 가격의 인상은 경쟁력 약화 및 수익성 악화를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번 가격인상이 급격한 환율상승과 국내 수급 불균형의 심화로 불가피했다고 설명한다. 철광석과 원료탄을 거의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는 처지에 환율상승이 곧 원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격인상에도 불구하고 국내 철강가격은 미국, 일본, 영국 등의 내수가격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가격인상 후 국내 열연코일 가격은 미화 3백13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내수가 3백80달러, 일본의 4백29달러, 영국의 3백69달러보다 50∼1백10달러 정도 낮다. 영국의 아연도 강판을 제외하고는 미국 및 일본의 냉연코일 및 아연도 강판도 우리나라의 내수가격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지금까지 국내철강가격은 국제가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 수요업계의 국제경쟁력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는 국내 철강시장의 만성적인 초과수요 지속과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했다. 국내 수요업계가 비싼 외국산 철강제품의 수입을 기피하고 값싼 국산제품에만 매달려 수급난이 더욱 심화된 것이다.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수요가들은 가능한 방법을 동원, 국제가보다 낮은 국내 철강재를 구입하는 반면 중소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수입품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 및 채산성 악화를 야기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철강시장도 시장기능의 회복을 통해 시장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철강가격이 시장수급의 바로미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국내철강업의 시장구조가 과점적 형태하에 있기 때문에 이론상 순수한 경쟁시장 원리에 의해 가격형성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또한 시장불균형을 완전히 가격기구에 의존하여 해소하려 할 경우 수요산업 및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철강가격의 신축적 운용을 수요업계의 경쟁력 약화 및 수익성 악화라는 이유로 비난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경제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직간접 규제를 완화내지는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독 철강가격만은 시장원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지나친 산업이기심이다. 시장경제는 가격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할 때 자원의 최적배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즉 어떤 상품의 시장가격이 균형가격보다 낮을 경우 초과수요가 발생해 가격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시장가격이 균형가격보다 높을 때는 초과공급이 발생하여 가격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만약 초과수요에도 가격인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족한 공급분 확보경쟁 과정에서 정실배분 또는 불법적인 암거래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이 경우 수요자는 정상가격보다 오히려 높은 코스트를 지불해야 될지도 모른다. 이는 수요자 입장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철강가격 인상으로 국산제품에 대한 가수요가 걷히고 비싼 수입품을 구입해온 중소업계에도 국산품이 배분된다면 수요업계 전체의 수익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철강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해옴으로써 철강업계의 수익구조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포항제철을 제외한 국내철강업계의 지난 96년도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마이너스 1.3%로 제조업 평균 1.3%보다 낮고 자동차(0.8%), 전기전자(2.1%)보다도 낮다. 실제 이번 가격인상으로 수요업계가 안게되는 추가부담이 자동차산업은 연간 매출액의 0.2%, 가전업계는 0.5%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수요산업의 경쟁력지원이라는 명분으로 계속해서 철강가격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어 철강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면 철강업계의 발전을 저해함은 물론 수요업계로서는 고품질의 철강재를 공급받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요업계의 경쟁력 향상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는 지나치게 낮은 내수가격도 통상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지난 95년 6월 미국의 강관수입위원회(CPTI:Community on Pipe and Tube Imports)는 『열연강판 및 냉연강판에 대한 불공정무역 관행의 제거 또는 탄소강관 제품 관세를 1백% 인상할 것』을 통상법 301조에 근거하여 미무역대표부(USTR)에 청원한 바 있다. 다행히 정부와 업계의 설득으로 CPTI의 제소철회로 결론이 났지만 이는 낮은 내수가격과 경직적 가격구조는 통상마찰을 야기할 소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론적으로 철강가격의 시장기능 회복은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장기적으로 철강업계 및 수요업계의 산업체질을 강화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철강가격을 시장상황에 맞게 신축적으로 운용하는 일이야 말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속에서 철강업계와 수요업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약력 ▲경북대학원 경제학과 ▲미국 World Steel Dynamics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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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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