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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Life]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브락 라던스키

캐나다서 귀화한 파란 눈의 태극전사<br>"평창올림픽 티켓 꼭 딸래요"


라던스키와 딸 루시, 아내 켈리.

라던스키가 일본 니코 아이스벅스와의 아시아 리그 경기에서 공격 진영으로 침투하고 있다. 라던스키는 두 경기에 한 골씩을 터뜨리는 간판 공격수다.(오른쪽)

2월 말 인터넷이 들끓었다. '천재 소녀'로 불렸던 재미동포 프로골퍼 미셸 위(24)가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복수 국적을 유지할 기회를 놓친 탓으로 알려졌지만 이유에 관계없이 비난 여론이 거셌다. 과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해왔던 미셸 위였기에 팬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낄 만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인 지난달 말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가 브락 라던스키(30)의 복수 국적 자격 심사를 통과시켰다. 캐나다인으로 2008년부터 국내 남자 아이스하키 구단인 안양 한라에서 뛰어온 라던스키는 다음날 곧바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합류했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파란 눈'의 국가대표가 탄생한 것이다. 법무부는 2010년 5월부터 분야별 인재에게 특별 귀화를 통한 복수 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남자 프로농구의 혼혈 선수 문태종ㆍ문태영 형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백인이 태극마크를 달기는 라던스키가 처음이다.


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라던스키를 만났다. 라던스키는 '팀 코리아(Team Korea)'가 선명하게 찍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날 고려대와의 연습 경기는 라던스키가 '태극 전사'로서 뛴 첫 경기였다. 공격수인 라던스키는 득점에 치중하기보다 동료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며 한 팀으로서의 호흡을 맞춰가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라던스키가 보여준 주민등록증 확인서에는 '라던스키브락로버트'라는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 그는 "헝가리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돌아오면 한국 이름도 지을 것"이라며 "지금은 키(196㎝)가 크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길길이'라고 부른다"며 미소를 보였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기대주에서 아시아의 별로=라던스키가 뛸 세계선수권(헝가리 부다페스트ㆍ한국시간 15~21일)은 한국 아이스하키사(史)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대회다. 한국부터 이탈리아ㆍ카자흐스탄ㆍ헝가리ㆍ일본ㆍ영국까지 디비전1 그룹A(2부리그)에 속한 6개국이 출전하는데 5경기 가운데 2승을 거둬야만 그룹A에 남을 수 있다. 그래야 2016년 세계랭킹 18위(현재는 28위)에 맞출 수 있고 또 그래야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북미와 유럽이 초강세인 아이스하키에서 올림픽 출전은 축구로 치면 월드컵 16강 진출만큼 어렵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1년 전부터 라던스키의 귀화를 추진했다. 물론 라던스키 본인의 흔쾌한 수락이 있었기에 1년 만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라던스키는 "미스터 양(양승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전무이사ㆍ당시 한라 단장)이 지난해 3월 처음으로 귀화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귀화를 희망해도 심사 통과를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어찌됐든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한라 구단과 당시 2년 재계약에 사인하면서 한국에 남아 있기로 한 것도 귀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는 "국적에 관계없이 한 나라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뽑힌다는 것 자체를 무한한 영광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 종목의 특성상 스타플레이어 한 명이 있다고 해서 당장 팀 전력이 월등히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라던스키의 기량이 국내 선수들보다 한 수 위인 것은 사실이다. 아이스하키 명문인 미국의 미시간주립대를 나온 라던스키는 2002년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전체 79순위)에 지명될 정도로 전도 유망한 기대주였다. NHL에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2ㆍ3부리그와 독일 리그에서 활약하다 2008년 9월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라 소속으로 2008-2009시즌부터 아시아 리그(한국ㆍ일본ㆍ중국 총 7개 팀 참가)에 뛰어든 라던스키는 데뷔 시즌에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최다 골(29골), 최다 어시스트(28도움)를 싹쓸이했다. 올 시즌 성적도 정규리그 41경기 출전에 23골 53어시스트. 포인트 부문에서는 3위이고 어시스트는 2위 기록이다. '아시아의 별'로 자리매김한 라던스키는 "나는 운동 선수지만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 태도도 중요하다고 어릴 때부터 배웠다. 대표팀에서도 모범이 돼야 국가대표 귀화 선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뉴욕 같은 한국=라던스키는 "사실 귀화 결심은 5년 전 한국행을 택할 때보다 훨씬 쉬웠다"고 했다. 그는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 내게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한라에 입단하기 전까지 라던스키에게 한국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미드필더 박지성의 나라'였다. 라던스키는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경기를 자주 봐 박지성을 알고 있었고 그 전인 대학 시절에는 한국과 중국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한국이지만 살아 보니 놀라운 모습이 많았다. "삼성이나 LG의 전자제품이 세계 1ㆍ2위를 다투잖아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요. 도시의 사람들은 항상 활기차고 뭔가 바쁜 모습이에요. 지금의 한국은 뉴욕과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라던스키는 한국을 경험했던 주변인들의 추천으로 2008년 한국에 왔다. 당시 라던스키의 한국행에 한마디 반대도 없이 행운을 빌어준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소식에 다른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아이스하키 유소년 코치 출신인 라던스키의 아버지는 헝가리로 날아가 아들이 출전하는 세계선수권을 현장에서 관전할 계획이다. 라던스키는 "아버지는 귀화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나를 적극 지지해주셨다. 아들이 한국의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에 나간다는 것을 기특해 하신다"며 "캐나다인이 다른 나라 국기를 가슴에 품고 국가 대항전을 뛰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볼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식구들과 내 주변인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반기고 응원해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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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끝나도 한국 아이스하키 돕는다=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인 라던스키는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에는 서른여섯 살이다. 현역으로 뛰기 어려울 수도 있는 나이다. 라던스키는 그러나 "몸 관리 잘하고 큰 부상만 없다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덧붙였다. "그때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가 나와서 나를 제치고 올림픽 대표로 발탁된다면 그것도 좋아요.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올림픽 대표로 뛰는 것보다 한국이 올림픽 출전권을 따도록 돕는 것이 먼저입니다."

라던스키가 갖고 있는 평창 이후의 계획은 무엇일까. "2018년이면 한국 생활도 10년째다. 지도자로 한국에 남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그는 "하지만 한국을 떠나게 되더라도 언제나 한국 아이스하키에 관심을 갖고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개월 된 딸이 있는데 나중에 커서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어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국도 좋아요. 점점 '오픈 마인드'로 문화가 바뀌고 있으니까요. 내게 국적을 준 것만 봐도 그렇죠."

He is…

▲198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키체너 출생 ▲키 196㎝ 몸무게 95㎏ ▲2001년 미시간주립대 입학 ▲2002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신인 드래프트 전체 79순위(3라운드) 지명 ▲2004-2007시즌 NHL 2ㆍ3부리그 선수 ▲2007-2008시즌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선수 ▲2008-2009시즌~ 안양 한라 선수 ▲2013년 3월 특별 귀화로 한국 국가대표팀 합류






찌개국물에 비벼 뚝딱… '밥심'으로 사는 토종입맛 꽃미남

양준호기자

브락 라던스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밥'이다. 한국 생활이 벌써 6년째다 보니 입맛이 그렇게 변했다. 고깃집을 가면 반드시 공깃밥으로 마무리해야 하고 비빔밥을 좋아해서 그런지 어떤 음식이 나오든 밥에 비벼 먹고는 한다. 밥에 찌개 국물을 넣어 먹는 것은 기본이고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해도 마찬가지다. 햄버그를 조각 내 밥 위에 얹고 쓱싹쓱싹 비벼 깍두기 반찬과 함께 한 그릇 뚝딱한다. 사실 라던스키의 밥 사랑은 한국에 온 첫해부터 뜨거웠다. 경기에서 대패하고 돌아오는 차편에서 가라앉은 분위기에 눈치를 보면서도 "일단 밥부터 좀 먹자"고 통역에게 부탁했다는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배우 현빈과 축구 선수 페르난도 토레스를 닮았단 소리를 많이 듣는 '꽃미남'이지만 밥 앞에서는 체면 차리는 일이 없다.

2남2녀 중 셋째인 라던스키에게는 미국인 아내 켈리와 생후 8개월인 딸 루시가 있다. 한국에 오기 두 달 전에 결혼해 벌써 결혼 6년 차다. 켈리는 미국에서 잘나가는 자동차 모델이었다. 결혼 두 달 만에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니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하지만 라던스키는 "한국 얘기를 꺼냈더니 오히려 아내가 더 오고 싶어했다. 아내가 반대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후 영어 강사로 일했던 켈리는 루시를 낳은 후 그만두고 양육에만 집중하고 있다. 딸 루시는 아동복 카탈로그 모델로 활동했을 정도로 엄마ㆍ아빠의 예쁜 점만 골라서 닮았다. "딸 크는 것 보는 재미로 산다"는 라던스키는 "루시가 조금 더 크면 아내와 셋이서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찾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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