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정원 직원 자택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한 것으로 추정되는 녹음테이프를 압수함에 따라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가를 뜨겁게 달궜던 `도청의혹 문건'의 진실이 드러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문제의 테이프가 전화통화를 감청한 자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모임장소에 도청장비를 설치해 생산한 `미림팀식' 도청물일 가능성도배제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명칭이 바뀐 이후 이뤄진 불법 도ㆍ감청의 확실한 물증이 나온 만큼 그 내용에 따라서는 2002년 당시 끝내 미궁에 빠졌던 도청의혹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도청 논란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2002년 9~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등에서 국정원 최고위 간부만이 볼 수 있는 국정원 도청문건이라며 일련의 문건을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보고서 양식으로 정리된 문건에는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검찰에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설과 관련해 계좌추적 자제를 요청했다는 의혹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총련계 재일동포 2세인 요시다 다케시(吉田孟) 신일본산업(북일무역 중개회사) 사장 사이에 오간 대북사업 관련 대화내용 ▲대한생명 인수 문제에 대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 간 대화 등이 담겼다.
또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2002년 11월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공개한 문건에는 김원기 국회의장(당시 민주당 고문)-김정길 대한체육회장, 이인제 의원-박상천 전 의원, 이부영-서상섭 전 의원, 전재희-홍준표 의원, 중앙 일간지 기자-김만제전 의원 등 사이에 있었던 정치 현안 관련 대화내용이 포함됐다.
이들 자료가 실제 국정원 도ㆍ감청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정치사찰을 위한 정보기관의 도ㆍ감청이 DJ 정부에서도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것이였기에 당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그 때 자료에 등장한 인물 중 일부는 문건에 담긴 내용대로 전화통화한 사실이있다고 밝혀 의혹을 한층 증폭시켰다.
도청의혹 문건 공개 후 휴대폰 도청의혹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자 참여연대가 신건 당시 국정원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여야의원들끼리 고소공방을벌이면서 공은 검찰로 넘어왔다.
검찰은 사건을 2년6개월 가까이 끌다가 올 4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 휴대전화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과 함께 관련자들을 전원 불기소해 폭로 문건의 출처는 끝내 `오리무중'이 됐다.
그러나 올 7월 `안기부 X파일'이 세상에 나오면서 국정원 자체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DJ정부 때 국정원이 불법 감청을 했음이 확인되면서 다시 한번 문건들이 `진짜'였다는 의혹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따라서 이제 검찰이 확보한 문제의 테이프 내용 중 문건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느냐에 최대 관심이 모아진다.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결국 문제의 문건이 한나라당측 주장대로 국정원 도청자료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 테이프 내용이 당시의 폭로 내용과 일부라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수사의 무게 중심은 자연스럽게 폭로를 가능하게 한 도청자료의 유출 경위 규명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도청테이프를 집에 보관하고 있던 국정원 관계자가 어떤 경위와 목적에서 도청테이프를 국정원 밖으로 빼내 보관하고 있었는지, 유출 후 타인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는지 등이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측이 도청의혹 문건을 어떤 경위로 입수했는지도 수사를 통해 밝혀질것으로 기대된다.
만약 국정원 내부 인사가 정형근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도청으로 입수한정보 등을 제공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해당자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와 함께 새로운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그간 도청관련 고소ㆍ고발사건 수사 당시 검찰의 참고인조사 요구에끝내 응하지 않았지만 국정원 직원의 도청내용 외부유출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그 때는 검찰에서 해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 수사 향방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법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