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이제 국격을 높이자] <10·끝> 리딩 코리아를 향해

사회전반 품격 높여 '경제력·삶의 질' 조화되게<br>'선진국 베끼기'론 한계에… '한국형 발전모델' 시급<br>법치 확립등 '소프트 파워' 확충해야 지속성장 가능




지난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표선수들의 선전은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줬다. 하지만 한일 야구경기에서 일본을 응원할 정도로 심각해진 중국인들의 반한(反韓)ㆍ혐한(嫌韓) 감정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고 앞으로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화두로 남겨졌다. 중국인들의 반한감정 이면에는 공격적인 한류 마케팅, 올림픽 리허설 장면 유출 등 단발적인 요인 외에 중국의 신세대, 개혁개방의 과실을 먹고 자란 이른바 ‘80후’들이 한국을 더 이상 중국이 본받을 발전 모델로 꼽지 않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부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경제는 선진화됐지만 삶의 질이나 국가 브랜드, 외국인에 대한 수용성, 문화 파워 등 국격이 떨어진다고 인식되고 있다”며 “중국인의 혐한 감정은 대외적으로 한국이 가서 살고 싶은 나라, 존경 받는 나라로 도약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 안 통한다= “고도성장을 구가한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은 경제기적을 이룬 대표적 사례다.” (세계은행ㆍ국제통화기금(IMF) 등) 한국 사회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해 전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ㆍ철강 등 주력 산업들은 선진국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올라섰고 문화ㆍ예술ㆍ과학ㆍ학술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의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은 일부 산업과 기업ㆍ개인에 국한됐을 뿐 사회 전반의 대세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성장률은 하락하고 소득ㆍ고용 격차가 확대되는 ‘저성장 속의 양극화’ 현상이 고착화되는 와중에 저출산ㆍ고령화, 통일 비용 증가, 기후변화, 중국의 부상 등 위기 요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선진국과 1인당 국민소득(GNI) 격차가 커지면서 한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한국 경제의 신화가 최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과거 모방ㆍ학습을 통한 후발추격(catch-up)의 성공에 힘입어 선진국과 선도 경합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더 이상 선진국 베끼기 전략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선진국처럼 소득 2만달러 시대에는 혁신과 창조를 통해 한국형 발전 모델을 만들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ㆍ의식ㆍ관행의 선진화, 정치ㆍ사회 시스템의 질적 도약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국가 전반의 품격이 올라가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도, 선진국 진입도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이지 않는 게 힘이다=그렇다면 한국과 선진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경제력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사회 안정성과 투명성, 노사관계, 법치주의, 삶의 질, 국가 브랜드, 문화ㆍ관광, 환경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크게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이 OECD 평균은 69%인 반면 한국은 45%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브랜드 가치도 일본이 224%, 미국이 143%인 반면 한국은 29%에 그친다. 인재 육성, 정부 효과성, 사회 전반의 신뢰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통합 등 다른 지표도 OECD 하위권에 불과하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창의성과 혁신성, 민간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정부 역할, 사회적 자본의 확충 등 소프트 파워 부문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이 연구위원은 “고령화, 성장률 저하 추세를 감안하면 소프트 파워에 투자할 수 있는 기간도 10년 남짓에 불과할 것”이라며 “과거 경제 도약기와 마찬가지로 소프트 파워도 압축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문건 서울시정개발원 원장도 “지난 10년 동안 사회갈등이 컸던 이유도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소프트 파워 확충과 성장활력 복원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경 받는 나라를 향해=우리가 바라는 선진국, 국격이 높은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경제력과 삶의 질을 갖춘 매력 있는 국가다. 정 원장은 “안으로는 신뢰 받는 정부, 풍요롭고 조화로운 경제, 자부심 강한 국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갖춘 나라이며 밖으로는 벤치마킹해야 할 나라, 투자하고 가보고 싶은 나라, 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 성장산업 육성, 지식생태계 조성, 기술혁신, 인재육성 등을 통해 혁신주도형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 대내외 개방 등으로 개방과 신뢰 사회를 구축하는 한편 법ㆍ질서 준수, 타협의 문화 정착 등으로 사회적 자본이 축적돼야 한다는 게 정 원장의 지적이다. 사회 전분야가 고루 성장하는 동시에 경제력은 물론 몇 개 소프트 파워 부문에서 세계 1위 국가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브랜드 평가기관인 안홀트 네이션 브랜드에 따르면 세계 5위권 이내에 드는 경쟁우위 분야를 덴마크가 8개, 스위스와 미국이 6개, 스웨덴과 독일이 5개 갖고 있는 반면 한국은 하나도 없었다. 안병만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세미나에서 “선진국과의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오케스트라식의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며 “선진국과 격차가 있는 분야는 줄이고 대등한 분야는 경쟁력을 더 강화하며 새로운 경쟁우위 분야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고] '졸부국가' 오명 벗자
김주현 현대경제硏 원장
우리 사회에서는 집안이나 학벌이 유난히도 위력을 발휘해왔다.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손쉬운 평가기준이 돼왔다.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기업의 명성이 그 회사 제품의 평가기준이 된다. 브랜드 가치가 낮은 기업의 제품은 소비자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가끔 신제품을 출시할 때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기존의 브랜드가 신제품 마케팅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특히 그렇다. 지난 1989년 렉서스가 출시될 때 도요타 상표는 어디에도 없었다. 코롤라나 캠리 등 실용적인 자동차를 생산하던 도요타의 이름이 최고급 자동차 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트맥주도 비슷한 사례다. 조선맥주의 크라운은 2등 브랜드였다. 1993년 하이트맥주를 소개하면서 조선맥주의 흔적을 지웠다. 하이트맥주가 성공하면서 급기야 회사 이름까지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국가에도 브랜드 파워가 있다. 대체로 브랜드 파워가 높은 서구 국가의 국민들은 자기 나라를 자랑스럽게 밝힐 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기업도 높은 국가 브랜드의 덕을 본다. 일본의 마이너 자동차 회사 차가 세계시장에서 높은 시장성을 갖는 것이나 한국 중소업체의 휴대폰이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로 인기를 얻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그들의 가치나 능력에 관계없이 홀대를 받을 때가 많다. 심지어는 얼굴 색깔이 누렇거나 검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안홀트GMI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 순위는 조사 대상 38개국 중 32위로 거의 바닥권이다. 이는 2005년보다 더욱 하락한 순위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바닥을 맴도는 것이나 비슷한 양상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세계 13위 국가의 성적표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국가 브랜드 가치로 보면 미국은 GDP의 143%이고 일본은 224%인 데 비해 우리는 GDP 크기에도 못 미치는 29%에 불과하다. 즉 평가의 주요 요소인 정부ㆍ문화ㆍ관광ㆍ국민성 등이 국가의 브랜드 가치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덩치가 그럴듯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어린애 수준에 불과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서투른 외교, 국제사회의 문제에 대한 소극적 자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등이 우리 정부의 모습이며 물건 팔아먹기에는 적극적이나 국제사회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우리 기업들의 실상이다. 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불친절한 것이 우리의 국민성이며 비공개로 진행된 개막식 연습장면을 방송에 내보내고 여자 수영선수의 탈의 장면을 촬영하는 등의 꼴사나운 모습이 우리의 실제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듣기 싫은 졸부국가가 우리에게 적합한 별명일지 모른다. 이제 졸부국가의 부끄러운 옷을 벗어야 한다. 경제규모에 걸맞게 국가의 품격을 높여 존경 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 이것이 국가경쟁력의 기반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국가의 품격을 높이려면 우선 국민의 의식개혁이 시급하다. 세계화 시대에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국제사회의 예절을 익혀 '어글리 코리안'을 벗어나고 외국인들에 대한 적개심과 배타성을 극복해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로 우리의 세계기업들도 세계의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다국적기업은 투명하고 건전한 것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규모에 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작은 나라 뉴질랜드는 자국을 필요로 하는 세계 분쟁지역에 파병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동남아 쓰나미 사태 때 한국은 GDP의 1%를 지원했지만 호주는 GDP의 17%를 지원했다. 우리가 가난으로, 전쟁으로 어려울 때 국제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우리도 오랜 빚을 갚아야 한다. 브랜드 가치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ㆍ국민 모두가 정성껏 신뢰의 벽돌을 쌓아가면 언젠가 자랑스러운 한국이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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