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규제개혁의 성공조건

말랑말랑한 촛농에 엄지손가락 지문을 찍게 하고 여기에 실리콘을 부어 지문을 뜬다. 이렇게 해서 만든 수강생들의 가짜 지문을 자동차학원 주행연습장 앞에 설치된 지문인식기에 입ㆍ퇴실 시간에 맞춰 인식시키면 주행연습을 하지 않고도 주행연습한 시간이 나타나게 된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15시간 이상의 도로주행 연습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 4~5시간만 연습하면 면허를 딸 수 있게 된다. 상당히 매력적인 촛농이다. 도로주행연습을 민간에 위탁하면서부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준법정신을 오판한 결과이다. 국민 모두가 준법정신 무장을 물리치료사의 면허를 빌려 물리치료를 했다 하고 요양급여를 허위로 청구하거나 진료일자를 부풀리고 진료시간을 조작하여 요양급여비를 청구하는 병원, 저가 의약품으로 대체조제하고 요양급여는 고가의약품 가격으로 청구하는 약국 등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지혜로 법을 피해간다. 성매매방지법을 피해 변칙성매매하고, PC방 허가를 받아 바카라ㆍ포커ㆍ고스톱 등의 사행성 PC방을 경영한다. 상품권법을 폐지하자마자 사행업자가 상품권 사기를 친다. 애초에는 변동금리조건으로 대출조건을 제시해놓고 고정금리를 적용해 한몫 챙기거나, 담보인정비율(LTV)을 위반해 과다하게 주택담보대출을 하고, 의사ㆍ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시설자금 용도로 은행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입에 사용하기도 한다. 투기억제를 위해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라니까 허가 기준면적 이하로 쪼개서 여러 차례에 걸쳐 거래해 법망을 피한다. 결혼 중계업에 대해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규제를 풀기가 무섭게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이 봇물 터지듯 하고, 운전면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니 4일 만에 면허를 따는 운전천재도 등장한다. 탈법과 변칙에서 우리나라를 따라올 나라가 있을까. 소위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안 되는 게 없고 못할 일이 없는 나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좌우명의 영향인가, 아니면 국민적 자질이 탁월해서인가. 이처럼 변칙과 탈법이 판치는 나라에서 막무가내식으로 규제의 빗장을 풀고 무장해제하는 게 바람직한가. 물론 대책 없이 규제철폐를 할 리가 없고 지나치게 규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는 유별나게 규제가 많은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을 국민적 자질에서 찾고자 한다. 준법정신이 희박하고 융통성을 좋아하는 국민성이 그것이다. 법보다는 인정머리로, 원칙보다는 융통성으로 국가와 사회가 유지돼왔던 전통이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는지. 그러다 보니 규제를 강화하고, 그 규제를 피하는 수단이 더욱 정교해지고, 이처럼 규제의 술래잡기가 체질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성공적인 규제개혁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국민 모두가 준법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한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손해 본다는 굳건한 믿음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약간은 교조주의적인 생각이 국민성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친한 사이니까 묵인하고, 사회적 약자이니까 봐주고, 계층간ㆍ지역간 화해와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법 위반을 합리화해주는 풍토에서 규제완화는 그 의미가 없어진다. 규제의 고삐가 풀리면 풀릴수록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다. 법제도도 완벽하게 정비해야 다음으로는 미비한 법제도를 완벽에 가깝게 정비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규제하자 해놓고 규제망을 휘젓고 변칙ㆍ탈법을 자행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둔다면 규제는 교활한 탈법자들의 비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이 두 가지 조건이 성취돼야 규제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철두철미하게 법을 지키려는 국민의식을 고취시키고 계몽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이제 규제개혁은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됐다. 국민의식의 개혁을 통해 규제개혁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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