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현대투신 유동성지원 '명분쌓기'

'총수사재출자' 왜 나왔나정부가 현대 위기설의 진앙인 현대투신의 유동성을 지원을 위해 「총수 사재출자」라는 「준비된 무기」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전체의 자구노력을 대외에 알리는 「표현(表見)대리」 차원의 상징적 효과와 재벌계열사에 대한 무조건적 자금지원은 특혜라는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이중의 명분쌓기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재벌개혁 전체차원에서도 총수사재라는 민감한 촉수를 건드려, 2차 재벌개혁과 관련한 압박을 가하겠다는 정부의 심산이 엿보인다. 투신사 전체의 구조조정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일이다. 한투·대투 등 양투신 정상화는 공적자금 지원을 통해 당길 수 있지만, 현대투신은 유동성 처방만으로 정상화를 기대하기 힘들고, 시장참여자에게 조기정상화달성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기 위한 제일 척도가 총수의 전면참여라는 것이다. 관련기사'현대 사재출연' 논란 이기호 경제수석 "현대 자구노력해야 자금지원" ◇총수 사재출자, 왜 나왔나=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현대투신의 정상화를 위한 두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유동성 지원과 증자를 통한 조기정상화가 그것. 유동성지원은 증권금융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벌써부터 재벌계열 금융기관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따갑다. 뭔가 댓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근(李容根)금감위원장이 지난 27일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에게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요구한데는 분명 총수 사재부분도 포함됐을 것이라는게 대체적 관측. 사재출자가 거론된 것은 현대투신의 정상화가 유동성 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 유동성 지원은 말그대로 급전일뿐이다. 시장참여자들이 판단하는 현대투신의 부실은 약 1조5,000억원 규모. 막대한 자본잠식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영업을 통해 나는 이익으로 이를 메꾼다는 것은 너무나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현대투신은 내년말까지 외자유치 2,000억원 등 총 2조원의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을 시장참여자들이 믿으리라는 것은 소박한 기대다. 획기적 전환점이 필요한 셈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정상화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사정거리 범위까지 증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증자를 위해 현투의 대주주인 현대전자나 현대증권이 참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 소액주주때문이다. 현대전자는 투신에 돈을 추가로 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그룹의 오너가 손실을 메꾸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오너가 계열사 손실을 처리할 경우,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의미뿐 아니라 재벌개혁완수를 위한 책임경영 차원에서도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게 정부의 복합적 계산이다. ◇사재출자인가, 출연인가= 지난해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를 위해 이건희(李健熙)회장은 상장때 2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사재출연」 형식으로 내놓았다. 출연은 말그대로 「무상기부(DONATION)」의 의미를 지닌다. 정부는 삼성차 처리를 위해 자율을 빌린 출연이라는 해법을 내놓았었다. 물론 출연에는 98년 장형수(張亨洙)남선알미늄사장처럼,79억원 상당의 개인부동산을 회사에 쾌척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정부가 현대투신 처리를 위해 요구중인 것은 「사재출자」 방식이다. 사재출자는 98년초 김대중(金大中)당시 대통령당선자가 재벌총수들에게 요청한후 일종의 「재계 의무사항」으로 여겨져 왔다. 신격호(辛格浩)롯데회장이 1,000만달러의 개인재산을 출자하겠다고 밝힌 것이 재계오너들의 사재출자 물꼬를 튼 계기를 만들었다. 정부는 이번 현대투신 처리과정에서 유동성 지원을 댓가로 대주주 회사뿐 아니라 일종의 「표현대리」 차원에서 총수의 사재를 자본으로 끌어들이도록 요구한 셈이다. ◇사재출자, 넘어야할 산 많다= 그러나 총수사재출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사재출자를 위해 현 상황에서 가능한 방법은 크게 4가지. 우선 현대투신의 대주주인 현대전자의 오너인 정몽헌(鄭夢憲)회장이 현대전자 주식을 팔아 투신증자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鄭회장의 지배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금감위 관계자의 말대로, 총수일가가 「십시일반」, 「가족회의」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 즉 몽헌회장과 정몽구회장이 계열사 주식들을 맞교환해 증자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룹분리라는 재벌개혁 원칙에 역행한다. 세번째로는 가장 간단한 방법, 즉 몽헌회장이 갖고 있는 부동산 등을 처분하는 것이지만 그동안 계열사 정상화과정에서 대부분 담보 등으로 잡혀 갖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게 현대측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전자주식을 투신에 현물로 넣는 것은 상호주식보유로 법규에 위반돼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그룹 전체의 신인도 회복을 위해 사재출자라는 총론에 이의가 없으면서도 실천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는게 「사재출자론」의 현실이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입력시간 2000/04/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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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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