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전쟁' 에 비유되는 여권발급난

서울 노원구청이 여권발급 업무를 두고 민원인과 지자체가 겪는 불편과 고통의 현장을 담은 비디오를 청와대와 외교통상부에 보냈다. 얼마나 심각한지 눈으로 직접 보고 대책을 세워달라는 뜻이다. 구청은 시민들의 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업무가 많아 행정기관 중에서 가장 바쁜 곳이다. 그런 구청이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는 것은 여권발급 업무의 문제점이 이제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한다. 비디오에 나온 여권발급 현장은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다. 새벽부터 기다리다 지쳐 졸고있는 사람, 대기표를 받기 위해 아우성치는 모습, 화장실 갈 틈조차 없을 정도로 폭주하는 업무에 쩔쩔매는 발급창구 공무원 등등. 노원구뿐 아니라 서울시내 25개 구청 중 여권발급 대행업무를 하는 10개 구청과 경기도 등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권을 받는데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소득향상에 따라 해외여행객이 크게 늘고 있는데다 휴가철을 맞아 수요가 몰린 데 따른 것이다. 여권제작이 종전과 달리 사진을 디지털파일로 만들어 여권에 직접 프린트하는 전사방식으로 바뀌어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급난이 심한 일부 창구에서는 대기표가 수십만원에 거래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여권발급 전쟁은 어제 오늘이 아닌 오래 전부터의 일이고 일선 지자체들이 여러 차례 개선을 요구한 사항이다. 그런데도 사정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지고 있는 것은 정부가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예산부족과 여권제작방식의 디지털화 등을 이유로 들고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경제력 세계10위, IT(정보기술) 강국이라는 자랑이 무색하다. 특히 대기표의 거액거래는 우리 행정시스템이 과거 민원서류를 빨리 발급 받기 위해 급행료가 횡행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마저 준다. 정부는 더 이상 핑계대지말고 여권 발급 대행기관을 대폭 늘리고 지자체들이 건의한 여권처리 주전산기 용량확대 등을 적극 검토, 개선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여권을 받기 위해 전쟁을 치르듯 해야 하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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